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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6. 2020

부모는 철인이 아니다

휴직 37일째, 민성이 D+286

'아빠 보고 있나. 소파에 오르는 건 이제 너무 쉽다구.' / 2020.06.05. 우리 집


아내에겐 민성이 또래 아들을 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녀의 아들은 민성이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나, 당연히 뭐든 조금씩 빠르다. 아내는 이번 주 친구와 점심을 먹고 와서, 그 집 사정을 들려주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녀는 다음 달 복직하는데, 아이를 보면서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뒤늦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회복이 잘 안된단다. 그녀는 최근 병원에서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상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를 보면서 끼니를 챙길 시간이 없다며, 집에 초코파이를 한가득 쌓아놨던 그녀였다. 엄마의 몸이 정상일 수가 없다. 그녀는 우리보다 자녀에게 더 헌신적이었다. 아이가 자고 나면 이유식 육수를 2시간씩 끓인다고 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애 보면서 내 밥을 챙겨 먹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처럼 대부분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식품 등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한테도 좋지 않다. 


민성이는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면 확실히 짜증이 는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투덜거리고 말았을 일도, 먹고 자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더 심하게 투정을 부린다. 그래서 결국 하려던 일도 해내지 못한다.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어른도 비슷하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을 일도, 배가 고프거나 피곤할 땐 몇 배로 더 힘이 든다. 아이를 대할 때도 그렇다. 그러니 부모도 억지로라도 잘 챙겨 먹고, 잘 자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최근 읽은 '똑게'에서도 그렇게 조언한다. 책에선 비행기 안내방송 비유를 드는데, 위급상황에선 부모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쓴 다음,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줘야 한다는 거다. 그게 둘 다 사는 길이다.


부모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부모는 철인이 아니며, 쉽게 지친다. 얼마 안 남은 에너지를 긁어모아 헌신하는 게 자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쓸데없는 기대와 그로 인한 실망만 뒤따를 뿐이다. 


아이가 찡얼거리더라도 꿋꿋이 밥을 먹어야 한다. 애는 굶기고 내 밥만 먹는 것도 아니다. 애는 매 끼 시간 딱딱 맞춰 챙겨주지 않았나. 아이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도 기다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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