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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10. 2020

좌절을 가르치다

휴직 41일째, 민성이 D+290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풍경이다. 짧은 다리를 최대한 들어 올려 스스로 소파에 오르려 애를 쓰고 있다. 물론 대부분 실패한다. / 2020.06.09. 우리 집


어른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에겐 온 힘을 쏟아부어야 될까 말까 하는 일들이 있다. 스스로 소파에 앉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요즘 민성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소파에 오르려 안간힘을 쓴다.


내가 주로 매트에 앉아 있기 때문에, 민성이는 보통은 내 몸을 이용해 소파에 오른다. 낑낑거리다가 내 무릎이나 허벅지를 딛고 도약하는 식이다. 소파에 오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맛을 본 거다.


민성이가 놀다가 짜증을 낸다면, 열에 아홉은 혼자 소파에 오르려다 잘 안 되는 경우다. 그 짧은 다리를 최대한 들어봐야 소파에 닿을까 말까 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 뜻대로 안 되면, 그는 나를 쳐다보며 울상을 짓는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저곳으로 올려달란 얘기다. 하지만 나는 열에 아홉은 도와주지 않는다. 찡얼거리거나 울상을 지어도 그냥 그렇게 놔둔다. 그럼 아이는 둘 중 하나다. 포기하거나, 스스로 해내거나.


종교는 다르지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즐겨본다. 한 번은 자녀가 충분히 장성했는데도 계속 용돈을 타가 고민이라는 질문에, 스님은 부모에게 가기만 하면 돈이 생기는데 왜 힘들게 돈을 벌겠느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소파에 오르는 것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번번이 내가 민성이를 소파에 올려주면, 그는 소파 앞에선 계속 투정을 부릴 것이고, 노력도 덜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아빠가 올려줄 텐데 굳이.


지금은 소파지만, 아이에겐 오르기 힘든 게 더욱 많아질 것이다. 매 고비마다 잘 해내길 기도하고 응원하겠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포기해야 할 게 많을 거다. 그럴 때마다 내가 대신해줄 순 없다. 


아이에게 작은 것부터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좌절을 가르쳐주려 노력하고 있다. 정확히는 좌절에 견디는 법을. 9개월 아이한텐 너무 가혹할지 모르겠다. 9개월 아이 아빠의 고민치고는 호들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리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론 더 어려워질 것이다. 소파에 올려주는 건 되고, 결혼할 때 집 사주는 건 안되라는 법 있나. 아이는 순식간에 자라고, 부모가 어디까지 해줄 것인가의 경계는 너무도 희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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