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4일째, 민성이 D+293
휴직하기 전, 나는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그래야 했다. 주말에도, 퇴근 시간 이후에도 회사에서 갑자기 전화나 메시지가 올 때가 많았다. 나만 그렇게 산 건 아니었다. 우리 일이 그랬다.
카톡방도 참 많았다. 부서방이 있었고, 팀방이 있었고, 평직원 방이 있었다. 한 겹을 벗기면 또 한 겹이 나오는 양파 껍질 같았다. 숙직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카톡 알림이 몇 백개씩 쌓이는 건 예사였다.
휴직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한 건 그 카톡방을 정리하는 거였다. 도장깨기처럼 하나하나, 사정을 얘기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문자 메시지도 수신 목록에서 빼 달라고 하거나, 차단했다.
휴직하고 40여 일, 어느새 그 많던 메시지가 진짜로 오지 않기 시작했다. 문자와 카톡 아이콘 옆 빨간색 동그라미가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입사하고 10년 만에 난 온갖 '정보 공해'로부터 해방됐다.
하지만 정작 벨소리가 그치자, 나는 초조해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정보 공해도, 친구의 연락도 없었다. 나는 늘 실망했다. 10분 뒤에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나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물론 내 앞엔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너무나 귀여운 아들이 있다. 그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다 환히 날 향해 웃어준다. 하지만 지금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 저 9개월생 한 명뿐이다.
휴직 이후 나의 대화 상대는 아내와 민성이 단 둘이다. 아내도 출근 전후 잠깐 뿐이니 사실상 민성이 하나인데, 그 또래가 그렇듯 아직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결국 난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는 셈이다.
우주비행사는 광활한 우주 공간에 오래 방치될 경우를 대비해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가끔 아이를 보는 건, 그와 비슷하단 생각을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곳에서 우리는 언제 구조될지 알 수 없다.
광활한 육아 공간에서 외로움을 견디는 데 익숙해지려고 한다. 어차피 울리지 않을 스마트폰에는 더 이상 기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 '아빠'라 외치는, 구조의 목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