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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4. 2020

낮잠의 신세계

휴직 35일째, 민성이 D+284

낮잠 두 시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한 알의 감자 같기도 하다. / 2020.06.03. 우리 집


민성이는 매일 저녁 7시쯤 잠에 들고, 아침 6시쯤 일어난다. 평균 11시간이다. 낮잠은 최근엔 오전 오후 한 번씩, 하루 두 번으로 굳어지고 있다. 민성이는 그동안 한 번 낮잠에 1시간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제(2일) 낮에 꼬박 2시간을 자더니, 어제(3일)는 2시간 반을 잤다. 이틀 연속 2시간 이상 잔 것도 모자라, 낮잠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장하다, 우리 아들. 잠만 잘 자도 이렇게 칭찬을 받는 9개월생이다. 


아침 7시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민성이는 1시간 정도 더 놀다가 슬슬 눈을 비비기 시작한다. 오전 낮잠의 신호탄이다. 어제도 여느 때처럼 그가 신호탄을 쐈고, 8시가 조금 안돼 침소에 드셨다.


애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가 잘 때만 할 수 있는, 혹은 효과적인 일들이 있다. 민성이가 잠든 걸 확인하자마자 세수를 하고, 아침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민성이가 일어날 때가 많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이만큼 해둔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할 일을 모두 끝냈는데도, 민성이가 계속 조용했다. 


아들의 선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렸다. 핸드폰 게임을 몇 판하고, SNS, 인터넷 서핑도 했다. 역시 애든 어른이든 놀 땐 시간이 쏜살같다. 어느덧 시간이 오전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민성이가 잠든 지 2시간이 넘은 것이다. 


전례 없는 일에, 자도 너무 자는데 하며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그는 매트 구석에 흡사 감자처럼 웅크린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아내는 민성이가 최근 이앓이를 끝내, 이가 덜 아파 잘 자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뒤 잠에서 깬 민성이는 아빠를 보자 해맑게 웃었다. 아이가 잠을 푹 자고 나면 아이도, 아빠도 모두 컨디션이 좋다. 혹 낮잠 1시간과 2시간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인다면, 직접 경험을 해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된다.


육아도, 집안일도 손에 익어간다. 여기에 민성이의 낮잠까지 길어지니 내 자유시간도 조금씩 늘어난다. 애 보는 아빠도 이제 핸드폰 게임과 SNS, 인터넷 서핑보다 더 유익한 일을 찾아봐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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