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un 03. 2020

부디 이앓이였기를

휴직 34일째, 민성이 D+283

'여기 고구마 잘하네. 이모, 여기 고구마 간식 하나 더요.' / 2020.06.02. 우리 집


그제(1일) 밤, 어제(2일) 새벽은 민성이를 낳고 손에 꼽을 만큼 힘든 밤이었다. 그의 잠투정 때문이었다. 민성이는 자다가 통상 서너 번쯤 깨지만, 다시 재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순간, 아이는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찡얼거리다가도 쪽쪽이만 물려주면 곤히 잠들던 그가, 어제는 아예 물려고 하질 않았다. 입에 쪽쪽이를 갖다 대니 손으로 밀쳐냈다. 이런 적은 없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멘붕'에 빠졌다.


결국 깰 때마다 안아 재워야 했다. 반은 아내가, 반은 내가 민성이를 매 시간 그를 달래줬다. 전에는 쪽쪽이만 물려주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금방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제대로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정신이 몽롱했다. 아내는 아이가 이가 나느라 그랬을 수 있다고 했다. 민성이는 현재 윗니가 3개, 아랫니가 4개다. 그 7개의 치아에, 최근 나는 손가락을 잃을 뻔도 했다(맹수의 입에 손을 넣지 마세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아내가 민성이의 윗입술을 들어 올렸다. 우리 부부의 눈 앞에 그의 여덟 번째 치아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난리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앓이가 아니었으면 어쩌나 막막했더랬다.


사실 그동안 내가 편히 지냈던 걸 수도 있다. 아이의 잠 문제로 여러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부모들이 많다. 그들에 비해, 쪽쪽이 하나만 물려주면 금방 잠이 드는 아이를 둔 나는 매우 행복한 아빠였던 것이다.


본인도 피곤했는지, 민성이는 어제 첫 번째 낮잠 땐 1시간을, 두 번째 땐 2시간을 내리 잤다. 자는 것 말고도 먹기도, 놀기도 종일 투정 부리지 않고 잘했다. 덕분에 나도 그리 피곤하지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30대 중반의 나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가 잇몸을 뚫고 나오는 '이앓이'는 아이에게 큰 아픔이라 들었다. 아내는 아이가 이앓이를 할 땐 안아주면 아픔이 덜하다면서, 계속 안아줘야 한다고 했다.


어제 새벽, 안아줘야만 잠드는 아이가 얄미웠다. 못난 아비였다. 앞으로 이가 빠질 날만 남은 내가 그의 아픔을 어찌 이해하겠냐만은, 그래도 아이의 고통에 더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짐해본다. ###

매거진의 이전글 맹수의 입에 손을 넣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