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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2. 2020

맹수의 입에 손을 넣지 마세요

휴직 33일째, 민성이 D+282

'아빠, 잠깐만요. 택배가 와서요. 이거 먼저 뜯어보고 마저 놀게요.' / 2020.06.01. 우리 집


주말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샀다. 휴직 한 달, 집에 있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다독(多讀)했다기보다는 원체 집에 볼 없었다. 다음 책을 고민하고 있는데, 너 나 할  없이   추천했다.


아내가 출근한 103호 거실엔 또다시 민성이와 나, 둘만 남았다. 한 주, 정확히는 닷새의 독박 육아가 또 시작됐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이번 주 내게는 인간과 우주를 다룬 책, 코스모스가 있지 않나.


빳빳한 새 책, 대망의 첫 장을 넘기려는데 역시 가만히 있을 그가 아니다. 그는 책의 표지, 특히 칼 세이건의 사진이 실린 책날개를 잡아당겼다. 첫 장을 읽기도 전에 표지부터 사라질 판이었다.


책을 빼앗아봐야 잠깐이다. 그는 추노꾼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시 손에 넣을 것이다. 그때, 책 사이에 껴있던 종이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손바닥 크기의 전단지를 던져 그의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자연스레 책은 내 손으로 돌아왔고, 그는 잠시 조용해졌다. 얼마간 책을 읽다 고개를 돌렸다. 전단지는 걸레가 돼있었다. 아찔했다. 나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전단지 대신 칼 세이건이 누더기가 됐을 거다.


전단지는 민성이 입에도 들어가 있었다. 아무리 육아 방임 주의자라지만, 저건 건져내야 할 것 같았다. 종이를 꺼내려 아이의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 민성이가 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깨물었다.


눈 앞에 별이 핑 돌았다. 손가락 한마디를 잃을 뻔했다. 내가 사람한테 마지막으로 물렸던 적이 언제였나. 물렸던 적이 있긴 했나. 윗니 3개 아랫니 4개로 9개월짜리 아이가 무는 힘이 이리 세단 말인가.


그는 날로 힘이 세지고 있다. 대체로 얌전히 이유식을 받아먹지만, 어쩌다 수저를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밥알이 한가득이라 안 주려고 힘을 주면 자기도 뺏겠다고 용을 쓰는데, 아귀힘이 장난이 아니다.


민성이는 지금보다 힘이, 그리고 고집이 더 세질 것이다. 사람을 물거나, 때리거나, 밖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할 것이다. 맹수와 전쟁을 치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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