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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7. 2020

조수석의 아내가 곯아떨어졌다

휴직 38일째, 민성이 D+287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그의 옆모습이 사랑스럽다. 비록 콧날이 날카롭진 않지만. / 2020.06.06. 용산가족공원


대구에 사시는 장모님이 또 올라오셨다. 예전엔 딸을 보러 오셨지만, 지금은 손자를 보러 오신다. 평소 아내가 쉬는 주말도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는데, 든든한 지원군인 장모님과 함께하는 주말은 말해 뭐하겠나.


장모님은 민성이가 그새 다른 아이가 됐다고 했다. 고작 3주 만이다. 아이의 목소리는 커졌고, 안길 때 뻗대는 힘도 세졌다. 기는 속도가 빨라졌고, 훨씬 더 자주 앉는다. 아이의 변화는 그리도 빠르다.


아침 일찍, 우리는 또 용산가족공원을 찾았다. 이번엔 장모님도 함께다. 어제(6일)는 다행히 주차장에 자리가 있었다. 우리 부부의 예상대로 어머님은 공원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민성이를 재우고 오후엔 아내와 둘이서만 집을 나섰다. 민성이는 잠시 장모님께 부탁드렸다. 이런 날이 아니면 부부만의 외출은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말 모처럼 옷을 사러 가기로 했다.


차를 끌고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거의 출발과 동시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가 잠들었다. 정확히는 곯아떨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착할 때쯤 그녀는 산발이 되어 깨어났다. 발 밑에 핸드폰을 보더니, 이게 여기 왜 떨어져 있느냐고 물었다. 눈만 잠깐 감았단다. 낮엔 일하고, 밤엔 나와 함께 애를 돌보는 그녀다. 쉬지 못한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출근할 때 입을 원피스를, 나는 운동복과 간편한 외출복을 샀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쇼핑몰을 둘러보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둘이 이렇게 나와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민성이가 있지만, 그래도 방법을 찾아서 예전처럼 둘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옷도 사러 가야겠다. 노력해야, 가능하다.


결국 내 옆엔 아내가, 그녀 옆엔 내가 남아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다. 민성이는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고, 그래야 한다. 난 그 사실을 민성이를 볼 때마다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제도 다시 한번 그 사실을 떠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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