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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31. 2020

감히 그와의 소풍을 꿈꾸다

휴직 31일째, 민성이 D+280

만 0세, 너무 일찍 뻥튀기의 맛을 알아버린 강민성 어린이. 입 밖에선 바삭거리다 입 안에선 사르르 녹아버리는 마법 같은 그 맛. / 2020.05.30. 우리 집


다시 토요일이다.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온 주말이던가. 아내와 둘이 편하게 민성이를 모시며, 모처럼 여유로운 오전을 보냈다. 그에게 두 번째 이유식을 먹이고, 지난주에도 갔다 온 용산가족공원으로 또 차를 몰았다.


하지만 어제(30일)는 입성하지 못했다. 출발이 너무 늦었다. 이미 주차장이 만차라, 다른 차가 퇴장해야 우리가 입장할 수 있었다. 아내와 고민하다 근처 현충원으로 차를 돌렸다.


근방에 살았어도, 현충원엔 올 일이 없었다. 어제가 처음이었다. 아내는 고향 친구와 벚꽃을 보러 현충원을 왔었는데 참 좋더라고 몇 차례 얘기했었다. 5월 말, 벚꽃은 지고 없었지만, 짙은 녹음이 우리를 반겼다.


오는 내내 카시트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9개월,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기심 대천국씨'는 정작 현충원에 도착하니 잠이 들었다. 아주 살짝, 조심스레 그를 들어 유모차에 옮겨 담았다.


더웠다. 5월인데도 햇빛이 따가웠다. "올여름은 진짜 덥대. 어떡하냐 오빠" 걱정하듯, 약 올리듯 아내가 말했다. 그렇다. 난 더위를 잘 탄다. 민성이도 그러려나, 생각하며 부지런히 그늘을 찾았다.


마땅히 앉을 곳이 보이지 않아, 현충원 구석진 곳, 평범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민성이는 여전히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아내와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아내는 먹을거리를 사러 자리를 떴다.


나무 밑은 서늘했고, 주변은 푸르렀다. 아내가 사 온 계란을 까먹는데 문득 그녀와 소풍 온 기분이 들었다. 그래, 민성이 낳기 전엔 꽤 놀러 다녔었지. 우리의 소풍을 방해한 주범이 저기 세상 귀여운 표정으로 자고 있다.


민성이와 셋이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갈까 하다가도, 자중하라는 육아 선배님들의 조언을 듣곤 포기했었다. 마냥 먼 미래로만 여겼다. 하지만 어제, 그럴 수 있는 날이 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직감했다.


민성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옹알이가 부쩍 늘었고, 잠도 혼자 잔다. 집으로 오는 길엔 뻥튀기를 손에 들고 어린이처럼 베어 먹었다. 그와의 소풍을, 그래서 조금 더 풍성해질 우리 가족의 일상을 꿈꿔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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