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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27. 2020

매일 한 번의 산책, 한 번의 목말

휴직 27일째, 민성이 D+276

소파 위에 새 장난감을 올려놨더니 선채로 곧잘 가지고 논다. 민성이는 장난감에, 나는 그의 펑퍼짐한 엉덩이에 시선이 꽂혔다. / 2020.05.26. 우리 집


최근 민성이와의 산책 시간을 조금 늦췄다. 오후 2시에서 4시로, 2시간 정도 미뤘다. 잘 시간이 다가올수록 급강하하는 민성이의 컨디션을, 그가 좋아하는 산책으로 최대한 막아볼 요량이었다.


어제(26일)도 오후 4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민성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현관을 막 지나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 비도 오는데, 오늘은 나가지 말까. 유모차를 다시 돌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집은 좁고 아비는 책만 읽는데, 큰 불평 없이 혼자서도 잘 노는 아들이었다. 하루 종일 얼마나 답답했을까. 후다닥 뛰어가서 유모차 레인커버와 우산을 들고 나왔다.


나는 주로 인근 대단지 아파트로 도둑(?) 산책을 나가는데, 그곳은 항상 아이들과 그들을 봐주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어제는 그 넓은 단지에 우리 부자만 보였다. 비 오는 날 산책은 우리도 처음이었다.


산책은 1시간쯤 한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크게 두 바퀴 돌면 얼추 그 정도 된다. 민성이는 나무와 꽃,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느라 바쁘고, 난 그런 민성이를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 날 무슨 글을 쓸지도 고민한다.


단지를 한 번 돌고, 두 번째 돌기 전에 잠시 유모차를 세운다. 그리고 민성이를 꺼내 안아준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답답한 집에서 나와, 내 품에 안겨 세상과 대면하는 게 설레나 보다.


그의 미소는 내가 목말을 태워줄 때 정점을 찍는다. 목말을 타고 태워주는 부자, 다분히 촌스럽고 식상한 그림이지만, 까르르 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너무 좋아 매일 그렇게 한다.


나야 아들이 웃는 게 좋아서 그렇다 치고,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 걸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신기했을까, 아니면 내 머리카락을 모조리 잡아당기는 게 즐거웠을까.


비가 온 어제도 목말은 잊지 않았다. 비도 오는데 굳이 미끄럼틀 아래에서 목말을 하고 있는 부자는 참 딱해 보였을 테다. 민성이는 그 딱한 풍경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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