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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23. 2020

아빠는 5순위

휴직 84일째, 민성이 D+333

'키키, 이것만 먹고 또 놀아야지' / 2020.07.22. 군산 부모님 집


군산에 내려온 지 이제 나흘 지났다. 장난감은 반에 반토막이 났고, 서울 집과 환경도 많이 다르지만, 민성이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주고 있다. 내 아들이지만, 참 괜찮은 아이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성이는 저녁 7시쯤 자서 아침 6시쯤 일어난다. 군산에서의 첫날밤, 아이가 자정 가깝게 잠드는 바람에 오래 공들인 수면 사이클이 무너질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이곳에선 아이가 눈을 뜨면, 건너편 방에서 할미새가 날아와 '아이고, 예쁜 내 새끼'하며 아기새를 낚아채간다. 민성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에서 뽀뽀 세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어른은 일을 하러 가야 하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어른은 아빠뿐이다. 아침 8시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까지 모두 일하러 나가면, 민성이는 또 아빠와 둘이 남는다.


둘이 있을 땐, 서울에 있을 때처럼 심심하게 지낸다. 민성이는 내게 안아달라고 보채지도, 찡얼대지도 않는다.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민성이는 민성이 할 일을 한다. 나는 단지, 아이의 안전을 감시할 뿐이다.


하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 엄마가 돌아오면 아이는 돌변한다. 곧바로 장난감을 내려놓고 뒤돌아앉아 두 손을 높이 치켜든다. 안아달란 얘기다. 이미 눈이 하트 모양이 된 다른 어른들은 군말 없이 명령을 따른다.


어제(22일)는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나가려는데, 민성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래도 아빠가 나간다고 서운한 건가 싶었는데, 아이는 방향을 틀어 주방에 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럼 그렇지.


지금 민성이에게 아빠는 5순위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그의 애착인형인 토끼(토끼와 민성이), 그리고 맨 끝에 내가 있다. 그런데 내가 민성이라도 그럴 것 같긴 하다. 아빠는 재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10분 보는 것과 10시간 보는 건 다르다. 그들이 10분 동안 아이를 보듯, 내가 매일 10시간을 봤다면, 내 멘탈은 안녕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나는 10시간 동안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소리치지 않는다.  


민성이 두 돌 전후로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주양육자는 나, 나머지 셋은 부양육자다. 주양육자가 집이라면, 부양육자는 키즈까페다. 재미는 키즈까페에 맡기고, 나는 담담하게 민성이를 보살피면 되는 거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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