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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03. 2020

토끼와 민성이

휴직 64일째, 민성이 D+313

민성이와 그의 애착 인형 젤리캣 토끼, 지난달 22일 홈카메라로 찍은 사진. / 2020.06.22. 우리 집


민성이는 엄마가 출근해도 잘 울지 않는다. 아내가 복직하고 첫날부터 그랬다(엄마 복직 첫날, 민성이는 울지 않았다). 울어도 엄마가 나갈 때 잠깐 뿐이고, 뒤돌아선 이내 잘 논다. 연기가 꽤 된다. 


그런데 어제(2일)는 달랐다. 아내가 문 앞에 서자마자 울상을 짓더니,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놔주질 않았다. 아내는 몇 번을 문을 닫았다 열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아이는 대성통곡했다.


민성이는 내 품에선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오히려 점점 더 서럽게 울었다. 아내가 이 모습을 봤으면, 그녀는 분명 회사에 못 갔을 것이다. 아니면 곧바로 돌아왔거나. 그때 민성이의 토끼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인형은 민성이가 뱃속에 있을 때, 아내의 오랜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다. 우리는 민성이를 조리원에서 데리고 온 날부터 아이 머리맡에 인형을 두었다. 자연스레, 그 토끼는 민성이의 애착 인형이 되었다.


세상 잃은 것처럼 울던 아이에게 토끼를 쥐어주니 세상 조용해졌다.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민성이에게 토끼 인형은 2순위였다. 1위는 방금 출근한 사람, 3위는 두 달째 휴직을 내고 자기를 안아주고 있는 사람.


낮잠이건 밤잠이건, 민성이를 재울 땐 토끼 인형을 품에 안겨준다. 그러면 토끼를 껴안고, 토끼 귀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길로 잠든다. 백발백중이다. 이제껏 그가 잠자리에서 인형과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내는 민성이와 토끼가 본격적으로 친해진 게, 내가 혼자 재우기 시작하고부터 라고 했다. 잘 때마다 매정한 아빠는 문을 닫고 나갔으니 놀 사람이 없었겠지. 그러고 보면 토끼가 2위이고, 내가 3위인 게 납득이 간다. 


민성이가 자고 일어나면 입가에 인형 털이 한두 올 묻어있을 때가 있다. 많이는 아니겠지만, 아이 입에 털이 들어가는 게 걱정돼, 털이 안 빠지는, 조금 더 매끈한 토끼 인형을 최근에 하나 사주었다. 


하지만 민성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흡사 옛 토끼는 엄마, 새 토끼는 아빠 같다. 새 토끼가 출근해도, 아이는 울지 않겠지. 뭐, 안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옆에서 아이가 자는 것만 지켜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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