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24일째, 민성이 D+373
어제(31일) 오후 5시, 민성이와 산책을 나가려는데 창 밖이 흐렸다. 요샌 그 시간에 나가도 햇살이 쨍할 때가 많다. 옳다구나 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아파트 단지 너머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에이 설마 우리가 나와있을 때 퍼붓겠어, 라며 나는 호기롭게 직진했다.
내리쬐는 햇살도 없겠다, 선선하니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민성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집과 점점 멀어져 갔다.
하늘이 심상찮아 도중에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욕심을 부렸다. 민성이와 산책을 나왔다 들어가는 길에 커피 한 잔 사마시는 게, 애 보는 아빠의 '소확행'이다. 포기할 수 없었다.
코너만 돌면 카페였다. 하지만 그때, 하늘이 무너졌다. 빗방울은 굵어졌고, 비는 점점 세차게 떨어졌다. 한 번 뚫린 하늘은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민성이와 나는 조그만 지붕이 달린, 놀이터 한구석에 고립됐다.
조금 전까지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도 그곳에 모였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아이들은 한껏 들떴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하나둘 자리를 떴다. 남은 건 우리 부자와 남자아이 둘 뿐이었다.
나는 우산도, 우산을 가지고 와줄 엄마 아빠도 없었다. 더 기다려볼까, 아니면 결국 뚫고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품 깊은 곳에서 온기가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에겐 내가 우산이다.
빗소리가 신기했는지, 민성이는 가만히 내 품에 안겨있었다. 아이를 감싼 내 오른쪽 손바닥에서 아이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빗방울 안에서 느껴지던 아이의 온기, 그 온기 안의 심장 박동 소리,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비가 잦아들자, 나는 유모차를 밀며 뛰었다. 떨어지는 빗방울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따가웠다. 나는 흠뻑 젖었지만, 민성이는 다행히 발만 조금 젖었다. 튼튼한 우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세찬 비에도 찢어지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