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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31. 2020

육아일지를 떠나보내며

휴직 123일째, 민성이 D+372

주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민성이의 전매특허, '코 찡긋' 웃음. 아내는 이걸 '또치 웃음'이라고 부른다.  / 2020.08.29. 우리 차


부양육자가 주양육자의 고통을 오롯이 느껴보려면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면 된다.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시작해 저녁에 잠들 때까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봐야 한다. 


부양육자 -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대부분 아빠들이다 - 들은 아이와 잠깐 놀아주기, 기저귀 갈아주기 같은 육아의 극히 일부만을 체험하기 때문에, 진짜 육아의 매운맛을 알기가 어렵다.


나도 그랬다. 당시 바쁜 부서에서 나름 바쁜 일을 하며 지내던 나는, 매우 건방지게도 '아이 그까이 거 그냥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게 오만방자한 생각이라는 건, 민성이 70일쯤 처음 알게 됐다. 


그날,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는 말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이와 나, 단 둘이 집에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엄마 복직 첫날, 민성이는 울지 않았다).


'멘붕'에 빠졌던 나를 구원해 준 건 육아일지였다. 그 작은 수첩엔 아이가 언제 일어나 언제 밥을 먹는지, 언제 변을 보고 언제 잠드는지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것은 정녕 육아의 나침반이었다.


이후 휴직을 하고, 부양육자가 아닌 주양육자가 된 뒤에도, 난 육아일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민성이가 먹고, 싸고, 자는 모든 시간을 기록해놔야 마음이 편했다. 반대로, 기록을 놓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루쯤은 그냥 넘길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집착에 가까웠지만, 또한 돌이켜보면 민성이를 돌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이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안정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아이가 유독 많이 토하거나 변에 이상이 보이면, 근래 뭘 먹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아이가 밤잠과 낮잠을 언제 얼마나 자는지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다. 지금 민성이의 5할 이상은 육아일지 덕이다.


돌이 지나고부터는 육아일지를 쓰지 않고 있다. 육아 업무의 상당 부분이 줄었다. 아이의 식사시간과 메뉴를 적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색할 때도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는다. 기분이 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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