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25일째, 민성이 D+374
어제(1일) 아내는 늦게 출근했다. 코로나 때문이다. 8시 반쯤, 아내가 회사 업무차 잠시 휴대전화를 보고 있을 때, 민성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나는 보통 아내가 출근한 뒤,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아이를 등원시킨다.
집에 돌아오니,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가 "민성이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가는 거 아냐? 지금 어린이집에 가도 누가 있어?"라고 물었다. 순간 나와 아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민성이가 어린이집에 간 지 3주가 지났다. 돌도 안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다. 포인트는 두 개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과 내가 휴직 중이라는 것.
군산에 내려오기 전, 애 엄마 애 아빠인 회사 동기 둘과 밥을 먹을 때 그들도 그랬다. 어차피 휴직 중인데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육아 선배님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도 나는 어린이집을 보내야겠다고 했고, 그날 식사 자리는 뭔가 빠진 것처럼 찝찝하게 끝이 났다. 휴직 중이면서, 돌도 안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나는 덜 헌신적인, 이기적인 아빠일까?
나이가 어리더라도, 아이가 집에서 부모와만 있기보다 어린이집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발달에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다소 논쟁적인 얘기는 접어두겠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다른 얘기다.
너무 놀랍지 않게도, 나는 완벽하지 않다. 이해심과 끈기, 절제 모두 부족하다. 완벽의 반대말이 있다면, 사실 거기에 가까울 것이다. 개인으로서도 그런데, 부모로서는 어떨까. 나는 결함 많은 부모다.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적어도 나는 내 그릇의 크기를 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육아를 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 앞에서는 폭발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아이에게 열 번 잘해줘도, 한 번 욱하면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진다고 한다. 나는 탑을 그리 높이 쌓진 못했지만, 대신 그 탑을 한 번도 발로 찬 적은 없다. 난 내 그릇의 크기를 알기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탑을 쌓았다.
육아 에너지가 화수분 같아 아이와 종일 붙어있으면서도 짜증 한 번 안 내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그래서 난 민성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때 내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비축해뒀다가, 아이와 더 밀도 있게 놀아준다. 나에겐 그게 더 맞고,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민성이를 돌보는 게 아이에게도 이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