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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11. 2020

A + B = AB

휴직 134일째, 민성이 D+383

'아 진짜, 내 과자 어디에다 숨겨놨냐고!' / 2020.09.10. 우리 집


난 민성이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 걸 좋아한다. 민성이 머리털은 가늘고 보드랍다. 나와는 분명 다르다. 내 머리털은 빗자루 같이 뻗친다. 그의 가느다란 머릿결은 분명 엄마를 닮은 거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어떤 건 엄마를, 어떤 건 나를 닮았다. 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의 얼굴에선 가끔 내 얼굴이 비친다. 하지만 흰 피부와 가느다란 머리칼은 내게는 없는 것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나랄까.


민성이는 혈액형도 나와 아내를 조금씩 닮았다. 민성이는 AB형이다. 출산 다음 날인가, 산부인과 간호사가 우리 혈액형을 물었다. 나는 A형, 아내는 B형이라 답하니, 그녀가 말했다. "축하해요. 우리 아가는 AB형이네요."


아내와 나는 혈액형만큼이나 다르다. 그녀는 대구에서, 나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연애를 많이 했고, 나는 사실상 '모쏠'이었다. 그녀는 잘 버리고, 난 잘 버리지 못한다. 같은 것보다 다른 게 더 많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우리는 10년 전 만났고, 함께 살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 하지만 우린 잘 살았다. 같지 않은 덕에, 상대에게 없거나 부족한 걸 보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1년 전 아이까지 낳았다.


A형 아빠와 B형 엄마 사이, AB형 아기라니. 가족 모두 혈액형이 다르다. 아이는 누굴 더 닮았을까, 아니면 아내도, 나도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자랄까. 둘의 장점만 물려받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선택할 순 없겠지만.


어제(10일) 자기 전에 우리 부부의 어릴 적 모습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했다. 반추해보건대, 민성이가 저리도 잘 먹는 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아내는 지금 민성이가 그러는 것처럼 어린이집에서 잘 놀았다고 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아이가 자라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본다. 나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민성이는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A형 아빠와 B형 엄마의 행복을 합한 것 이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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