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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16. 2020

손님, 우산 두고 가셨어요

휴직 139일째, 민성이 D+388

오늘 하루도 피곤했을 친구를 위해 발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착한 아들. / 2020.09.15. 우리 집


민성이는 전부터 주방을, 특히 싱크대 주변을 눈독 들였다. 제 아무리 일어설 수 있다 해도,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이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그곳을 구경할 때마다 군침을 흘리곤 했다.


위험한 것만 치우며 괜찮겠지, 하며 그제(14일) 처음으로 아이를 싱크대 옆에 앉혀주었다. 예상대로 민성이는 눈이 휘둥그레져 젓가락, 국자 등을 가지고 몇 분을 꼼짝도 않고 놀았다. 덕분에 나도 재미 좀 봤다.


어제(15일)도 나는 다시 한번 전날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민성이를 싱크대 옆에 앉혔다. 하지만 아이가 그곳에 익숙해지는 데엔 하루면 충분했다. 민성이는 더 큰 자극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제만 해도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싱크대 위로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깔깔거리던 아이였다. 하지만 어제는 젓가락 대신 제 몸을 싱크대 위로 떨어트렸다.


거기까지도 나는 괜찮았다. 그곳을 욕조삼아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하기에 편히 즐기시라고 옷까지 벗겨드렸다. 민성이는 열심히 물을 첨벙거리더니, 급기야 싱크대 수챗구멍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그곳에서 끄집어냈다. 역시 가만히 있을 강민성이 아니었다. 아이는 알몸으로 거실에 드러누워 집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그는 절규했다. 나라 잃은 슬픔에 비할 만했다.


이유식을 앞세워 민성이를 겨우 진정시켰다. 의자에 앉혀 밥을 한술 떠먹이는데, 아이가 그릇에 손을 넣고 밥을 한 움큼 빼내 앞뒤로 흔들었다. 진정시킨 줄 알았는데, 진정된 게 아니었나 보다.


밥알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얀 벽과 내 하얀 옷에 주황색 당근이 박혔다. 민성이는 수저를 힘껏 내던졌다. 열 번도 넘었던 것 같다. 내게 복수를 하는 것 같았다. '내 즐거움을 빼앗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민성이는 날 도발했지만, 난 넘어가지 않았다. 난 이런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늘 육아서 - 아마 '똑게'였던 것 같다 - 에서 본 비유를 떠올린다. 아이는 가게에 우산을 두고 간 손님과 비슷하다.


손님이 우산을 두고 갔다고 해서, 점원이 소리를 지르진 않는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도 날 골탕 먹이려 그런 게 아니다.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니 나도 차분히 우산을 돌려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아이도 우산을 두고 가지 않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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