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Sep 15. 2020

어디서든 행복해야 해

휴직 138일째, 민성이 D+387

'히히. 잡았다, 이 놈들.' / 2020.09.10. 어린이집


청명하기로는 역시 가을 날씨가 압도적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이젠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살만하다. 창문만 열어놓아도 선선하다. 거실 안으로 습하지 않은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온다.


오후 5시, 민성이를 데리고 여느 때처럼 산책에 나섰다. 맑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근사하게 걸려있다. 놀이터는 이미 만원이다. 날씨만 좋다고 느낀 건, 우리 부자뿐만이 아니었다.


날씨가 좋기도 했지만, 이 시간 놀이터는 원체 인기가 많다. 주 고객은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막 퇴근한 아이들과 또다시 그 아이들에게 출근한 (대부분) 엄마들이다.


그들이 놀이터로 입성하는 풍경은 비슷하다. 일단 아이가 먼저 놀이터로 달려오고, 그 뒤로 엄마가 따라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는 한 손엔 어린이집 가방을, 다른 한 손엔 킥보드를 든 채 외친다. "뛰지 마!"


어제(14일)도 평소처럼 민성이를 한 손에 안고 놀이터를 두리번거리는데, 한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민성이보다 한 살이나 많을까, 미끄럼틀 위에 귀여운 여자아이가 서있고, 아래엔 엄마가 아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이제는 가야 한다고 하는 엄마. 그리고 그때 엄마들이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그럼, 민성이 혼자 놀고 있어. 엄마는 갈게, 안녕."


하지만 아이는 엄마를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응, 안녕." 엄마는 당황스러운 듯했지만 다시 태연하게, "엄마 진짜 갈게, 잘 있어. 어디서든 행복해야 해."


어디서든 행복하라는 엄마의 축복(?)에, 아이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손인사를 했다. "너, 엄마 서운하려고 한다?" 여자아이는 그러고도 몇 분을 더 놀다가, 결국 엄마 손을 잡고 그녀와 나란히 귀가했다. 


아이의 투정에, 아이를 돌보는 하루는 고될 때가 많다. 하지만 돌아보면 한 달, 어느새 돌이다. 민성이도 곧 저만큼 자라 아빠 혼자 집에 가라고 하겠지. 대견하면서도 씁쓸하다. 결국은 아이 혼자 남는다. 아들, 어디서든 행복해야 해! ###

매거진의 이전글 알레르기 미스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