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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Oct 03. 2020

나의 물음에 아이가 답한다

휴직 156일째, 민성이 D+405

노랗게 익은 벼 옆에, 노란 옷을 입은 귀여운 민성이. / 2020.10.01. 전북 정읍


14개월 민성이는 내 말을 알아들을까? 알 수가 없다. 말을 못 하기 때문이다. '민성아, 아빠 해봐'라고 하면, 아이는 입을 앙 다문 채 토끼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볼 뿐이다. 


반면, 나는 민성이 말을 조금 알아듣는다. 그는 혀 대신 몸으로 말을 하는데, 예컨대 손가락으로 과자 수납장을 쿡쿡 찌르면 저 문을 열어 과자를 달란 얘기다. 


아이는 그런 식으로 냉동실 문이나 장난감 통을 가리키며 날 쳐다본다. 가끔 '으으!'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메시지는 동일하다. '저거 열어줘, 아빠'다. 아이와 소통하는 건 모국어가 다른 외국인과 소통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민성이도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할 때가 종종 있다. 드디어 일방통행에서 벗어났다 랄까. 대표적인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민성이, 고추 어딨어?'랑 '도리도리'다.


먼저 민성이에게 '고추 어딨어'라고 물으면, 아이는 손을 그곳에 가져다 대면서 씩 웃는다. 할머니가 처음 발견했는데, 말을 할 때마다 열에 아홉은 그렇게 반응한다. 처음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아빠 어딨어'라고 해도 그곳에 손을 대고, '엄마 어딨어'라고 해도 그렇게 한다. 아빠, 엄마가 도대체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그래도 하는 짓이 예쁘다.


최근엔 '도리도리'가 추가됐다. 아내와 나는 집에서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어린이집 아니면 할머니다. '민성이 도리도리'라고 하면 아이가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든다. 


나의 물음에 아이가 답한다. 조금씩 아이와 소통이 되는 걸 느낀다. 기특하고, 뿌듯하다.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새 14개월인 것처럼, 그 순간 역시 금방 찾아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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