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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17. 2020

민성이에게 TV 대신 책을

휴직 17일째, 민성이 D+266

미래의 독서왕 강민성 어린이. 어머니와 함께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탐닉 중이다. / 2020.05.16. 우리 집


얼마 전, 친구 둘을 만났다. 곱창을 먹다 한 명이 '부부의 세계' 이야기를 꺼냈다. 무심코 "그게 뭔데? 요즘 인기 있나 보네"라고 물었다가 원숭이 취급을 당했다. 난 진짜 몰랐다, 그게 뭔지.  


우리 집엔 TV가 없다. 없어진 게 아니고, 신혼 때부터 아예 들여놓지 않았다. 내 직장, 방송국에는 (당연하게도) 사방팔방이 텔레비전이었고, 집에서만큼은 거기서 해방되고 싶었다. 아내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텔레비전에 에너지를 뺏기는 것도 싫었다. TV가 틀어져있으면 지나가다 시선이 붙잡힌다.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흐름이 끊기고, 가족과 대화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TV가 없어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거실 소파 맞은편, 으레 텔레비전 자리로 여겨지는 그곳엔 - 지금은 컴퓨터를 놓았지만 - 커다란 책장을 둘까 생각 중이다. 민성이는 그렇게 TV가 없는 집에서 커갈 것이다.


민성이의 삶에서, 텔레비전이 빠진 자리엔 책을 채워 넣으려 한다. '겜돌이'였던 나부터 민성이 앞에선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기 시작했다. 효자 아들을 둔 덕에 내 생활도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


휴직 2주 동안 책 두 권을 읽었다. 회사 다닐 땐 1년에 책 한 권 안 읽던 나였다.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몸소 실천하는 거라고 들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아이도 자연스레 따라 읽지 않을까, 순진한 기대를 해본다.


민성이가 생기기 전 일이다. 아내와 집 근처 고깃집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 엄마와 어린 남매가 앉았다.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나서, 책을 읽으며 엄마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내와 몇 번을 그 이야기를 했다. 상상을 해본다. 나와 아내가 외식을 하러 갔는데, 어린 민성이가 얌전히 책을 읽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뭐, 뜻대로 되진 않겠지만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난 방송국에 다닌다) 잘 찾아보면 장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TV를 끄면 그 시간, 그 에너지로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열린다. 어렸을 때부터, 그걸 민성이에게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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