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6일째, 민성이 D+265
종일 비가 내렸다. 커튼을 젖혀놨지만, 밖만큼이나 집 안도 흐렸다. 그래도 장인어른을 모실 땐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민성이를 안고 눅눅한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버님을 묻고 온 날)
사흘 동안 민성이를 돌봐주신 장모님은 오후에 다시 대구로 내려가셨다. 그녀는 나와 민성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어찌 저리 똑같노"하며 몇 번을 웃으시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에 분주했다. 특히 아내가 바빴다. 장인어른 장례를 치르고도, 치르기 전만큼이나 해야 할 게 많았다. 그녀는 작은 방에 들어가 병원에, 보험사에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었다.
나도 회사에 장인상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정부 긴급재난지원금도 신청했다. 하지만 그건 금방이었다. 나의 주된 임무는 어찌 저리 똑같은 내 분신, 민성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거실 매트 위, 내가 육아휴직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그곳에서, 오랜만에 부자(父子)가 뒹굴었다. 민성이는 이제 기는 것만큼이나 자주 앉는다. 앉을 때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긴 했지만, 훨씬 안정적이었다.
기는 민성이와 앉는 민성이는 느낌이 달랐다. 무엇보다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나와도, 제법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기분이 묘했다. 며칠이나 못 봤다고, 민성이는 그새 자라 있었다.
아이는 날이 다르게 큰다는 말,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수준의 관용구로만 여겼었다. 육아휴직 보름이 지나,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양손으로 어깨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이내 휘청거리던 아이다. 손을 뗐을 때 잠깐만 버텨도 '어어, 앉는다, 앉는다'했던 그 아이가, 이제는 내 도움 없이도 혼자 앉는다.
앉게 된 걸로 이렇게 호들갑인데, 서고 걷고 말하게 되면 오죽할까. 어제는 분명 못했던 걸, 오늘은 아이가 해낼 때, 소름 같은 게 찾아온다. 휴직이 아니었다면, 평생 못 느꼈을 감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