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4일째, 민성이 D+263
자정이 다 돼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와이프는 출근할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빈소엔 아버님 영정사진도, 조화도 아직이었다. 황망함이 채 가시지 않은 세 딸만이, 아버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장인어른이 운명하셨다, 주무시듯 편안하게)
아내와 손을 잡고 밤 산책에 나섰다. "주무시듯 편하게 가셨어. 의료진들도 너무 친절했고, 동생도 아빠도 행복해했어." "그러게, 다행이야."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례식장 주변을 돌고 또 돌았다.
빈소 쪽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장지 답사에 나섰다. 아버님은 수목장으로 모시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둘 다 수목장 숲이 마음에 들었다. 저마다 사연을 지닌 조화(弔花)가 알록달록하게 그곳을 수놓고 있었다.
민성이와 아버님을 뵈러 오기도 좋아 보였다. 묘비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닐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끝내 외할아버지를 보지 못한 아이, 아버님을 어떻게 얘기해주면 좋을지 생각하며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우리가 잘못되면, 민성이는 이 모든 걸 혼자 해야겠지?" 차 안에서 와이프가 물었다.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돼." 그러곤 잠시, 둘 다 생각에 잠겼다.
다시 병원, 그제야 아버님 사진이 놓였다. 간성혼수로 의식을 잃고 그 길로 운명하신 장인어른에게, 영정사진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두 딸과 놀러 갔다 찍은 사진에서 그의 생전 모습을 오려 액자에 담았다.
직원이 입관식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왔다. 막내 처제는 아직 아버님께 읽어드릴 편지를 다 못 썼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크게 써야 아빠가 읽을 거라면서, 그녀는 큼지막한 글씨로 편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처제는 편지를 아버님께 읽어드리며 엉엉 울었다. 아내는 말끔해진 장인어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고생하셨다고 했고, 나도 아내와 민성이를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아버님만 빼고, 결국 우리 모두 울었다.
민성이를 못 본 지 하루가 지났다. 휴직 이후 한시도 떨어진 적 없던 우리 부자다. 그가 보고 싶다. 방금 자다 깨, 와플 자국이 선명한 그 보들보들한 뺨에 얼굴을 비비며,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