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Oct 28. 2020

아이를 기다리다

휴직 181일째, 민성이 D+430

'아빠, 우리 뭐 먹으러 가는 거예요? 크아, 생각만 해도 좋네요!' / 2020.10.25. 차 안


요즘 어린이집에 민성이를 데리러 갈 땐 유모차를 두고 간다. 맨 몸으로 가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온다. 이젠 민성이가 밖에서도 잘 넘어지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민성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온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묵은 피로가 가시는 순간이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고 문 밖으로 나온다. 민성이는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한다. 땅에 떨어진 낙엽을 만지작거리다가 하늘이나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날 쳐다보기도 한다.


내 걸음으론 집까지 5분 거리지만, 민성이와 함께 걸으면 20분은 걸리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반은 안아줘서 20분이다. 만약 정말 민성이 걸음으로만 온다면 최소 1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한두 걸음 걷는가 싶다가도, 제 눈에 조금만 신기해 보이는 게 있으면 금세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느낌 탓일까, 아이의 관심사는 이상하리만큼 집 반대 방향 쪽에만 포진해있다.


아이를 기다리는 건 쉽지 않다. 바람이 차서, 밥때를 놓칠 것 같아서, 돌멩이 만진 손을 또 입으로 가져갈까 봐서 걱정이다.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피곤하기도 하다. 마냥 밖에 서있어야 하니 다리도 아프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바쁘게 살아야 했다. 입학과 취업, 결혼, 육아 모두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길에서 흘려보낼 시간은 없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민성이는 길가의 돌멩이를 보고, 나는 돌멩이를 보는 민성이를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몇 번을 그랬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길에서 시간을 흘려보낸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1년 넘게 남았지만, 결국 나는 회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럼 그때는 아이를 기다려주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기다려주자. 그게 바로 지금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그거 어디서 가져왔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