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Oct 27. 2020

아들, 그거 어디서 가져왔어

휴직 180일째, 민성이 D+429

'내가 이 구역의 신문지 찢기 왕이다!' / 2020.10.23. 어린이집


눈 깜짝할 새 주말이 갔다. 엄마 아빠가 월요병에 시달릴까 봐, 효자 민성이는 어제(26일)도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새로운 한 주에 어서 적응하라는 그의 따뜻한 배려다.


민성이 밥을 먹이고,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이가 안방에서 아내의 화장품을 들고 나왔다.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들, 그거 어디서 가져왔어?"


그건 아내의 화장대 서랍 안에 들어있었던 물건이었다. 아내도, 나도 그걸 서랍에서 꺼내 놓은 적이 없으니, 민성이가 서랍을 열고 직접 꺼내온 것이다. 그 서랍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었다. 


키가 그만큼 자라기도 했겠지만, 아이가 더 영리(혹은 영악)해진 것도 있다. 민성이는 점점 사물의 안과 밖, 높낮이 등의 개념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또 사물의 형태와 위치를 기억한다.


민성이가 서랍 뒤지는 거야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서랍을 여는 게 전보다 더 능숙해졌고, 전에는 열지 않았거나 못했던 서랍도 열기 시작했다. 어제 아이가 아내의 화장품을 꺼내 온 서랍도 그중 하나였다.


민성이는 어제처럼 예상 못했던 물건을 가져와 우리를 놀래지만, 반대로 우리가 주문한 물건을 가져와 우리를 놀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기저귀다. 


지난 주말 아내가 민성이에게 "기저귀 가지고 오세요"라고 하자, 아이가 정말 자기 방에 가서 기저귀를 들고 왔다. 신기하고 기특하면서, 약간 무섭기도 했다. 아, 아이가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있구나. 


민성이는 어제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서랍을 열어, 새로운 물건을 끄집어내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기저귀를 갈 때가 되면 내 요청에 새 기저귀를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기저귀를 갈 땐 얌전히 있지 않았지만.


어제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 민성이와 같이 걸어왔다. 휘청거리지도 않고 잘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어느새 네가 나랑 걷고 있구나. 휴직 여섯 달째, 아이가 점점 어린이가 되어간다. ###

매거진의 이전글 기는 아이 vs. 걷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