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84일째, 민성이 D+433
어제(30일) 점심엔 라면을 끓여먹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은 라면을 끓여먹는다. 월화수목금요일, 매일 집에서 혼자 먹는 점심, 가끔 밥을 먹기 싫을 때 먹는 특식이랄까. 그렇다. 난 라면이 특식인 삶을 살고 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물이 끓으면 수프와 면을 집어넣는다. 계란을 깨트려 라면 위에 풀어 넣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아침엔 아내한테 핀잔을 들었다. 민성이 밥을 먹이려고 냉장고를 뒤적이던 그녀는, 아이 먹을 게 너무 없다고 했다. 또 민성이 국을 냉장고에 너무 오래 두지 않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민성이 유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아이 음식을 준비하는 게 좀 서투르다. 그래도 나름 매일 한 가지씩 반찬이나 국을 만든다고는 만들었는데, 아내에겐 그게 잘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아내는 돈을 벌고, 나는 살림을 한다. 월급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니 돈을 잘 벌고 있는지는 분간이 어렵지만 살림을 제대로 하는지는 냉장고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살림 타박은 성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이 먹을만한 게 별로 없으니 주말에 장을 보러 가자는 얘기를, 그냥 내가 살림이나 똑바로 하라는 얘기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 라면을 특식으로 먹다 보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그렇게 된다.
오전엔 팀장급 선배가 카톡을 보냈다. 그는 언제 복직을 하냐고 물었고, 내가 1년 넘게 남았다고 하니, '계속할 거라는 거지?'라고 재차 묻고는 아기 잘 보라며 대화를 끝냈다. 회사 인사철인가 보다.
휴직을 6개월이나 썼지만,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피해 의식이 있다.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속옷을 개서 아내와 내 서랍장에 집어넣는다. 아직도 나는, 이런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웃긴다.
생각이 길어졌는지 라면이 조금 불었다. 얼른 먹고 민성이 미역국을 끓여야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렇게 엉망인 건 아니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나는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