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Nov 14. 2020

남편, 육아휴직 쓰길 잘했지?

휴직 198일째, 민성이 D+447

초록 공룡과 초록 옷을 입은 민성이. 그들은 그렇게 한 동안 대치했다. / 2020.11.12. 집 앞 키즈카페


민성이가 요즘 들어 내게 꽤 '앵긴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신기할 때가 더 많다. 아이가 이젠 날 제법 의지하는구나, 제법 날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나랑 둘이 있을 때는 원래 잘 들러붙었다. 뭔가 필요할 때 옆에 나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근래 달라진 건 아내와 셋이 있을 때도 가끔 내게 달려온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옆에만 붙어있으면 아빠는 편할지 모르지만, 육아 부담이 한쪽으로 쏠린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고 아빠는 항변할 수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절대 스스로 평평해지지 않는다.


우리 집도 그랬다. 우리 집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예컨대 바쁜 아침,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면 민성이는 꼭 엄마 옆에만 있으려고 했다. 출근 준비가 필요 없는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워킹맘인 아내는 화장을 하는 순간에도 아이가 옆에서 노는 걸 그리 싫어하지 않았지만, 비효율적인 건 사실이었다. 엄마 편히 준비하라고 내가 민성이를 들어 올리면 그는 그렇게 발버둥을 쳤다.


민성이는 여전히 엄마 껌딱지지만, 이젠 조금씩 아빠도 찾기 시작했다. 이번 주엔 엄마가 화장할 때 그녀 무릎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내가 뭘로 유혹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쨌든 아이가 내게로 왔다. 그의 전매특허인 '또치 웃음'을 지으며 내게 안겼다. 엄마가 있는데도 아빠한테 안기는 데까지, 육아휴직 반년이 걸렸다.


요즘 부쩍 가까워진 부자를 볼 때마다, 아내는 "남편, 육아휴직 쓰길 잘했지?"라며 내게 묻곤 한다. 돈 버는, 정확히는 돈을 아주 조금 버는 기계로 전락할 뻔했는데 자신이 구해줬다나.


아내가 휴직을 쓰래서 썼다기보단, 우리 가족의 상황과 평소 내 신념이 날 휴직으로 이끌었지만, 뭐가 됐든 그녀의 말이 맞다. 육아휴직 쓰길 잘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평일 오후, 키카의 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