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01일째, 민성이 D+450
아내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대뜸 그랬다. "오빠, 그 어린이 TV에 나오는 당나귀 있잖아. 사자탈 쓰고 막 까부는." "응. 왜?" "그거 오빠 같아."
그녀는 웃겨서 웃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왜 갑자기. 내가 거기 나오는 당나귀를 닮았어?" "아니, 하는 행동이." 나는 당나귀고, 아내가 생각하는 내 탈은 민성이다.
아내를 만난 지 10년, 우리의 권력 구조는 명확했다. 갑과 을 사이엔 싸움도 성립될 수 없었다. 을의 사과와 갑의 용서가 있을 뿐. 하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선 (아주) 조금 달라졌다.
육아 스트레스에 그 어느 때보다 내가 툴툴거리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별 내색 없이 내 짜증을 받아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남자는 육아휴직을 하면 종종 사람들로부터 무시받는 기분이 든다고 내가 말했을 때, 아내는 오히려 오빠는 육아휴직 덕분에 더욱 대우받고 있다고, 인권이 신장됐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내에게, 내가 민성이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협박)한다. 아이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그녀라는 걸 알기에, 번번이 이 작전(협박)은 잘 먹힌다.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는 의기양양하게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강풍에 탈이 벗겨지고, 동물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
아내는 당나귀의 최후를 언급하며, 내후년에 나도 복직하면 민성이 뒤에 숨어 호가호위하던 시절은 모두 끝나고 그 당나귀 꼴이 될 테니, 조심하라고 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민성이와 나는 확실히 가까워졌다. 웬만한 바람엔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부자는 꽤 끈끈해졌다. 복직까진 아직도 1년 반이나 남았다. 아내의 바람(?)과 달리, 사자와 당나귀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