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1일째, 민성이 D+270
휴직하고 첫 손님이 찾아왔다. 누군가 집에 올 땐 항상 아내가 함께였다. 어릴 적 고향 동생, '미운 4살' 딸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놀러 오겠다고 했다. 아, 좋겠다, 어린이집.
우리 집에 오자마자 그 손님은 육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면서, 마치 제 집인 마냥 주방에 들어갔고, 아이 간식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사 온 아보카도와 바나나를 민성이가 먹기 좋게 갈아주었다.
서로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점심은 배달 음식을 시켜 함께 먹었다. 그녀가 아이와 놀아주는 동안 밀린 집안일을 했다. 하루가 수월하게 흘러갔다. 애 엄마가 집에 놀러 오니 참 편했다.
애를 보는 일상은 비슷하다. 아이와 함께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먹이고 재운다. 몇 번 그러다 보면 하루가 저물고, 자고 일어나면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2014년 개봉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선, 주인공 톰 크루즈가 미래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뒤, 다시 깨어나기를 무한 반복한다. 애 보는 것도 비슷하다. 아이와 함께 '타임 루프'에 갇히는 거다.
어제는 나의 '육아 타임 루프'에 누군가 들어와 균열이 생겼고, 그래서 시간이 다소 빠르게 흐른 느낌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육아휴직 동지가 생기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지만 내 동지들은 죄다 회사에 있다. 30대 중반,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아이가 없는 친구들도 많다. 평일 오후, 아이를 둘러메고 만나 수다를 떠는 풍경이 내겐 과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힘든 건 아니다. 민성이만큼 아빠를 편하게 해주는 애가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일상은 순조롭다. 굳이 따지자면 '무료하다'에 가깝다. 안다, 배부른 소리인 거. 몸이 편해 이런 소리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아이는 아빠가 놀아준다. 그런데 육아휴직 중인 아빠랑은 놀아줄 사람이 없다. 아빠 친구들은 대부분 일을 하고, 엄마 친구를 사귀기엔 아직 겸연쩍다. 휴직 기간, 마음 맞는 육아 동지가 생기기를 고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