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60일째, 민성이 D+509
지금 내 삶은 충분히 편안하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도 어언 반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내 일상은 매우 예측 가능하다. 변수는 손에 꼽는다.
나의 가장 큰 임무이자 과제, 민성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아내와도 잘 지낸다. 휴직 초기, 막연히 외롭고 울적했던 감정도 많이 잠잠해졌다. 이래서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나 보다.
그 약을 온몸에 덕지덕지 발라 이젠 힘들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답답할 때가 있다. 어제(14일)도 그랬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아내가 재택근무를 해서 평소보다 편했다.
육아휴직을 하면 매일이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을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온다. 아이와 놀아주다 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대체로 이 패턴이다. 코로나 시국엔 주말도 평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집 대신 아내와 같이 아이를 돌보고, 부모님 집에 놀러 가는 것 정도만 다르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답답한 걸까? 그 전엔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더 자유롭긴 했지만, 그때도 뭐 그렇게 심장 터지는 삶을 산 건 아니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자고, 크게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내 생일이었나. 그걸 계기로 회사 후배와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받다가 그가 물었다. "선배, 일하는 게 나아요, 육아휴직이 나아요?" "음. 일을 할 땐 휴직이 나은 것 같고, 휴직을 하니 일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일할 때는 또 그 생활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매일 집에서 '혼밥'하고, 대화 상대는 16개월 아이밖에 없는 지금에야, 그때의 생활이 그립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는 그게 피곤할 때가 많았다.
일할 땐 육아가 편할 것 같고, 육아를 할 땐 일이 편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래 봐야 1년 남았다. 1년 후엔 원 없이 일할 테니, 지금은 민성이와 시간을 보내는 데 더 집중하자. 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