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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Nov 26. 2020

애 보는 집의 어느 아침 풍경

휴직 210일째, 민성이 D+459

'이 동네 낙엽은 제게 맡기세요!' / 2020.11.23. 어린이집 앞 공원 


민성이가 운다. 정확히는 울음과 짜증 사이, 그 어딘가의 소리다. 비몽사몽이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아직 아이가 깰 시간은 아닌데. 핸드폰 액정을 들어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역시나.


민성이 방으로 가서 아이를 토닥인다. "민성아, 조금 더 자야지. 너무 일러." 민성이의 소리가 짜증 쪽에 더 가까워진다. 그래도 놀아줄 순 없다. 6시 전엔 절대 놀아주지 않는다. 나의 마지노선이다.


아이는 조금 더 투정을 부리다 마지못해 내 옆에서 잠깐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귀신같이 6시에 눈을 떠 내 몸을 흔든다. 6시 됐다 이거지. 민성이의 하루는 그렇게 일찍 시작된다. 매일.


"민성아!" 안방에서 들려오는 (졸리지만) 해맑은 목소리. 일어나자마자 아내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나는 민성이 밥을 차린다. 내가 식판에 밥을 담아오면 아내가 먹이고, 나는 전날 써놓은 육아일기를 마무리한다. 


그가 밥을 먹고 일어난 곳은 전쟁터와 같다. 식탁 밑엔 아이가 먹다 남긴 밥알이, 각종 반찬이 나뒹군다. 민성이 손에 귤을 쥐어주고, 잽싸게 그의 흔적을 정리한다. 


이젠 우리가 밥을 먹을 차례다. 아침은 늘 비슷하다. 시리얼과 과일, 거기에 커피를 곁들인다. 금방 차려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먼저 식사를 끝낸 아드님에겐 뻥튀기를 종류별로 건네 시간을 번다.


그래도 7시 반이다. 책도 몇 권을 읽고 민성이도, 우리도 밥을 다 먹었는데 그렇다. 민성이랑 조금 더 놀아볼까. 아이는 어린이집 가방을 뒤적이고 있다. 그는 요즘 거기에 꽂혔다.


가방에서 빨대컵을 꺼냈다 집어넣기를 무한 반복 중인 아이 얼굴 위로 햇빛이 드리운다. 아이 입엔 아까 뻥튀기와 함께 먹은 말린 딸기가 묻어있다. 아이 얼굴이 뽀얘 빨간 딸기 부스러기가 더 도드라진다. 


민성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천천히, 구석구석 살펴본다. 내 아들이지만 너무 예쁘다. 누군가를 이리 빤히 쳐다보는 건 실례일 텐데, 내 아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민성이 옷을 입힌다. 몇 번을 다시 잡아다 겨우 등원 룩을 완성한다. 폐허가 된 거실을 뒤로하고 세 가족이 집을 나선다. 민성이가 손을 흔든다. '안녕, 집아. 조금 이따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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