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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Dec 12. 2020

다음 주에도 휴원령은 유지됩니다

휴직 226일째, 민성이 D+475

'내가 이곳의 왕이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 2020.12.07. 우리 집


턱 밑에 베인 상처가 꽤 깊다. 민성이는 어제(11일) 낮에도 한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그리고 연일 내가 씻을 때에만 눈을 뜬다. 난 허겁지겁 면도를 마무리하고 민성이를 안으러 갔다. 턱에서 바닥으로, 핏방울이 떨어졌다.


금요일은 어린이집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오는 날이다. 나는 2주째 민성이 손을 잡고 망망대해에 떠있다. 코로나 암초는 생각보다 크고 단단했다. 그래도 군산에는 확진자가 많이 줄었다. 이번엔 혹시 모른다.


'다음 주에도 휴원령은 당분간 유지됩니다.' 신호는 잔인하리만큼 간결했다. 믿고 싶지 않았던 내 예상대로,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일주일 뒤에도 구조되리란 보장은 없다.


배에 아이의 구호물자는 차고 넘친다. 민성이는 어린이집이건 민성이 집이건 잘 먹고 잘 놀았다. 조난을 당한 건 나였다. 내가 먹을 게 부족했다. 당초 어른을 위한 구호물자는 배에 없었다. 나는 서서히 메마르고 있었다. 


별 수 없다. 다음 구조 신호를 기다리며 묵묵히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매주 금요일,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별 수 없기는, 울적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또 한 주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날, 나는 날이 바짝 선다. 독이 잔뜩 오른다.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아내와 부모님이 보인다. 지금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조난선에 구호물자를 보내주는 이들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나.


군대에서 수십 킬로미터 행군을 할 때, 이대로 쓰러져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힘들다고 해봐야 엄살이라고 할 테니, 여봐란듯이 픽 쓰러지고 싶었다. 그때는 불행이었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난 쓰러지지 않았다.


지난 한 주, 나는 민성이에게 똑같은 책을 똑같은 자리에서 수십 번 읽어주었다. 내 입은 책을, 눈을 창 밖을 향했다. 그게 힘들다고 하면 엄살이라 할 테니, 픽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누가 좀 알아줄까 싶어서. 


구조선을 눈 앞에서 놓친 날은 유독 힘들다. 하지만 난 안다. 한 주가 시작되면 또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아이를 보다 보면 힘든 날도 있다. 그게 지금이다.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결국 행군은 끝나고, 부대엔 특식이 기다리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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