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Dec 15. 2020

장난감 기차와 민성이

휴직 229일째, 민성이 D+478

'크. 딸기가 쓰다. 달콤하지만 새콤한 것이, 인생과도 같구나.' / 2020.12.14. 부모님 집


육아는 '아이템빨'이라고 했던가. 가정보육 3주 차, 쓰디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를 위해 아내가 민성이 장난감을 몇 개 주문했다. 어제(14일)는 조그마한 블록 기차가 우리 집, 301호에 도착했다.


장난감 상자에는 내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기차가 세 량, 그 위엔 미키와 미니 마우스가 선물 상자를 가득 싣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제는 기차를 조립하면서 시간을 잘 보냈다. 민성이가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 레고를 가지고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였나, 부모님은 두 분이 함께 식당을 운영하셨고, 나는 동생과 식당 주방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했다. 


그 방 안에 레고가 가득 담긴 통이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게 답답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블록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다 보면 몇 시간이 뚝딱이었다. 똑같은 블록이지만, 매일 다른 장난감이 만들어졌다. 


민성이는 날 닮았을까. 장난감 상자를 가져왔을 때 아이의 얼굴은 이미 상기돼있었다. 비닐 포장을 뜯자마자 민성이는 내 손에서 블록을 낚아챈다. 그리고 양 손의 블록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서로 끼워본다.


하지만 역시 잘 되지 않는다. 아이 주먹만 한 블록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민성이 옆에 앉아있다 떨어진 블록을 주워 조금씩 기차를 만들어본다. 옛날 생각이 난다. 서른여섯에도 레고가 재미있을 줄이야.


민성이가 그걸 보더니, 내가 블록을 끼우는 족족 다시 빼낸다. 만드는 건 못하면서, 부수는 건 귀신이다. 나는 조립하고, 아이는 분해한다. 결국 기차 만들기는 포기했다. 


이번 주엔 민성이 장난감 두어 개가 차례로 도착한다. 가정보육 3주 차는 이걸로 버텨볼 요량이다. 3주 차 첫날이었던 어제는 새 장난감 덕분인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책을 읽어주다,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틈틈이 집안일도 하며 아이와 하루를 보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던가. 나도 조금씩 가정 보육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생활이 길어지는 건 별로다.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 ###

매거진의 이전글 가자, 가정보육 3주 차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