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36일째, 민성이 D+485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회사 생각이 난다. 설거지를 할 때나 아내의 출퇴근을 위해 차를 몰 때, 민성이와 책을 읽다 아이가 다음 책을 가지러 간 사이 창 밖을 바라볼 때, 그럴 때 더러 옛날 일이 떠오른다.
2011년 입사했으니, 올해 5월 휴직할 때까지 9년을 일했다. 나는 내 직업과 직장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30대 중반, 다 진심은 아니겠지만 퇴사를 입에 달고 사는 또래들이 적지 않다.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일이었으니, 쉬울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 일이 갖는 무게를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을 그렇게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자신했지만, 사실 그렇게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9년 동안 내세울만한 성과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하면서 게으름도 많이 부렸다.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집에 있으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과거 내 실수가, 내 잘못이 떠오른다. 그럼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쥐구멍에 숨고 싶어 진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복직까진 1년도 넘게 남았다. 두 살이나 더 먹었으니, 아이도 키워봤으니, 회사로 돌아가면 예전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때보다 뭐가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겁만 더 많아졌다.
이 일이 나에게 잘 맞는 걸까? 회사 동료들을, 특히 안팎으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동료들을 떠올려 본다. 난 그들처럼 날카롭지도, 부지런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할 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기엔 내가 너무 바빴다. 저녁 늦게 오늘 일을 마치면, 내일 일을 걱정해야 했다. 민성이가 아니었으면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직을 하니 생각할 시간이 많다. 매일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내게 중요한가. 휴직 2년, 적잖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면 길지 않다. 내 삶에 이런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