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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Dec 19. 2020

나는 오늘도 달린다

휴직 233일째, 민성이 D+482

'입에 있잖아 아들… 더 들어갈 공간도 없는 걸.' / 2020.12.16. 군산 이마트


취미란에 '드라이브'를 적어내는 사람을 종종 봐왔다.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는 것은 이동을 위해 불가피하게 타고 다니는 것이지, 그게 어떻게 기분 전환이 된단 말인가.


난 운전면허증을 20대 초반, 군대에 막 다녀와서 땄다. 그때는 내 또래들이 많이 그렇게 했다. 언제 쓰일지는 모르지만, 따두긴 해야 하고, 전역 후에 시간이 나기도 하니.


역시나 쓸 일이 없었다.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둔 면허증은 5년이 지난 뒤에야 꺼내 들었다. 입사 후 지역 근무를 위해선 차를 몰아야 했다. 첫 차는 3백만 원짜리 중고 베르나였다. 나중엔 수리비가 차 구입비만큼 들었다.


1년 반 지역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이고 차문을 긁힌 적은 여러 번이었지만 그렇게 큰 사고는 처음이었다. 차는 반파됐다. 나도 상대 운전자도 안 다친 게 용했다.


그 길로 내 인생 첫 차를 폐차시키고 한동안 차를 몰지 않았다. 서울에선 차 없이 출퇴근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 급할 땐 택시면 충분했다. 아내와 둘 뿐이었으니 오히려 편할 때가 더 많았다.


민성이를 낳기 전, 다시 차를 샀다. 쿨한 아내는 스마트폰 중고차 앱으로 매물 몇 개를 둘러보더니, 몇 천만 원을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다음 날 광주에서 기사님이 차를 몰고 집 앞까지 와주셨다. 그게 지금 우리 차다.


군산에 오고 나서는 아내도 운전을 시작했다. 차는 주로 아내가 몰고 다녔다. 휴직 중인 나는 차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매일 할머니 집을 찾는 부자를 위해 아내는 차를 두고 나갔다.

 

나는 하루에 세 번 차를 몬다. 민성이를 태우고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줄 때, 오후에 일이 끝난 엄마, 민성이 할머니를 싣고 그녀의 집에 갈 때, 그리고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고 퇴근한 아내를 다시 데려올 때다.


이걸 드라이브라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요즘 들어 부쩍 취미란에 드라이브를 적어내는 사람들이 이해된다. 운전을 하는 게 기분 전환이 됐다. 민성이가 어린이집도 안 가는 지금, 차 안에 있을 때만큼은 답답하지 않다.


민성이도 차가 달릴 땐 뒷좌석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있는다. 나는 앞에서, 그는 뒤에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가끔 라디오에선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인생의 또 한 가지 즐거움을 알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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