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39일째, 민성이 D+488
2년 전 민성이는 콩알만 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훨씬 작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아내는 갑자기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히 그어진 두 줄을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뻥!"
정말 아이가 생겼다. 건강한 30대 중반 부부가 아이를 갖는 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막상 아내 손에 들린 임신테스트기를 보니 느낌이 묘했다. 그래서 내 입에서 그리도 멋없는 첫마디가 튀어나왔나 보다.
민성이는 우리 부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단연코 지금까지 내가 받은, 그리고 앞으로 받을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었고, 선물일 것이다.
1년 뒤, 콩알보다 작았던 우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꽤 자랐다. 그때 민성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그만 쿠션에 누워 색색의 모빌을 보는데 썼다. 생후 백 일하고도 20일 정도 더 지났을 때였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난 국회에 있었다. 텅 빈 국회 기자실에 앉아 국회의원들의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를 보고 있었다. 그 이전 해와는 정 반대 의미로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내가 일을 할 때 늘 그랬듯, 그날도 저녁 뉴스를 끝내고 밤 9시쯤 퇴근했다. 집 앞에서 조그만 치즈 케이크를 사서 아내와 조촐하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내는 케이크에 초 하나를 꽂고 잠시 눈을 감았다. 뭘 빌었느냐고 물으니 가족의 평안이라고 했다. 지난 1년, 나는, 우리는 평안했나?
이듬해 4월, 국회의원들이 필리버스터로 다툰 선거법으로 총선을 치르고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의 지역 발령으로 우리 가족은 군산에 내려왔고, 첫 돌이 지난 민성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아내와 나는 민성이와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이제 아빠와 엄마가 누구냐 물으면 달려와 다리에 폭 안긴다. 아직까지 우리는 그녀의 바람대로 평안하다. 충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