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45일째, 민성이 D+494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이 하얗다. 올 겨울 들어 눈 같은 눈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눈은 내리는 걸 볼 때만 좋다. 당장 아내 출근길이 걱정이었다. 역시나,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민성이 옷을 입히고 부랴부랴 가족 셋이 차에 올랐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집에서 보던 것보다 눈발이 더욱 굵다. 핸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7년 전 그날도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다. 지금의 아내, 그때의 여자 친구와 나는 겨울 제주도를 찾았다. 아내는 눈 쌓인 한라산 정상에 올라보고 싶다고 했다. 20대 끄트머리의 우리는 그리도 겁이 없었다.
한라산의 설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고생을 사서 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는 닿을 수 없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정상에 오르는 길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다시 내려가는 일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호기롭게도 산 중턱에 주차해놓은 렌터카에 시동을 걸었다. 타이어에 체인도 감지 않은, 조그만 승용차였다.
결국 하산하는 길에 사고가 났다. 차는 도로를 이탈해 턱 아래 나무를 들이받았다. 도로 옆이 숲이 아니라 낭떠러지였다면, 이 육아일기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길에 미끄러지던 그때의 기분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핸들을 돌렸는데 차는 돌아가지 않았다. 차가 통제되지 않을 때의 그 공포감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진 길이 덜 얼었다. 어찌어찌 아내의 회사까진 무사히 왔는데, 문제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다. 이번엔 심지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두 살짜리 아이까지 차에 타고 있다. 난 두려웠다.
거북이 속도로 달렸음에도 바퀴가 몇 번 헛돌았다. 핸들이 내 손에서 삐끗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7년 전의 난 사고가 나도 괜찮지만 지금은 안 된다. 지금은 민성이가 있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민성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날씨가 좀 풀릴 때까지 차는 봉인해두기로 했다. 아빠가 된 지금의 나에겐, 안전이 제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