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8일째, 민성이 D+257
지난달, 민성이의 외할아버지, 장인어른이 쓰러지셨다.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집에서 의식을 잃으셨는데, 다행히 이웃주민이 발견했다. 간병 말기에 나타난다는 '간성 혼수'였다.
당장 영천에 있는 병원에 갔다가, 대구 큰 병원으로, 어제(7일)는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병상을 옮겼다. 장인어른은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병원이건, 더 큰 병원이건 간이식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혼자셨다. 장녀인 와이프, 그리고 그녀의 막냇동생밖에 챙길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며칠째 영천과 대구 병원, 서울 집과 회사를 - 그녀는 이달 초 복직했다 - 오갔다. 매우 초인적이었다.
어제도 와이프는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저녁엔 늘 스마트폰으로 어디 병원을, 어느 의사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대단하고 안쓰러웠다.
우리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성이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밤에 푹 주무신 것도 아니다. 나도 따라 일어났는데, 하루 종일 꽤 타격이 있었다. 일단 몽롱했다. 저녁에는 매사 귀찮고 짜증이 났다.
좋을 땐 뭐든 좋다. 악재가 없고 모든 일이 순탄하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매사 배려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땐, 상대를 배려하기 쉽지 않다. 당장 내가 힘드니까.
아내는 아버님의 병마와, 나는 민성이와, 민성이는 성장통과 싸우고 있다.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 팽팽할 땐, 한 사람이 힘을 빼면 다른 사람이 더 힘들어진다. 해병대 목봉 체조 같은 거다.
육아휴직 8일째, 피로가 쌓인다. 하지만 내 짐의 무게는 와이프가 마주하는 일과 비할 바가 안된다. 이가 잇몸을 뚫고, 매일 키가 몇 센티씩 자라고 있는 민성이에 비할 바도 아니다. 고생 최약자인 내가 우는 소리할 때가 아니다.
장인어른은 아직 민성이를 못 보셨다. 몸상태가 좋아지시면 민성이를, 이 세상 웃음이 아닌 그의 박장대소를 보여드리고 싶다. 그 미소를 일찍이 접하셨다면, 아버님도 의지할 게 꼭 술밖에 없진 않으셨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