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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01. 2021

아듀, 2020

휴직 246일째, 민성이 D+495

휴직 다음날, 민성이 좀 기던 시절. 올 한 해, 이랬던 아이를 걸어 다니게 만들었다. 수고했어. 아빠도, 민성이도. / 2020.05.03. (옛) 우리 집


2020년의 마지막 날, 오후 7시,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있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사실은 횡단보도 인지도 모르겠다. 가로등 너머에서 눈이 날아와 내 얼굴에 부딪혀 천천히 부서진다.


몇 시간 후면 올해도 끝이다.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생각한다. 올 한 해는 어땠나.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 역시 제일 큰 건 육아휴직이다. 2020년 5월 1일, 내 인생 첫 육아휴직이 시작됐다.


그때 민성이는 기어 다녔다. 앉는 것도 불안해 어깨 한쪽을 잡아줘야 했다. 당연히 아이는 어린이집도 가지 않았기에 정말 하루 종일 민성이와 붙어있었다. 먹이고, 재우고, 먹이고, 재우고. 그게 내 하루 일과였다.


신호가 바뀌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딛는다. 이런 날씨엔 집 앞 마트에 가는 것도 부담이다. 하지만 우리는 굶어도 민성이는 굶길 수 없다. 아내가 뭘 사 오라고 했더라. 다시 한번 핸드폰을 열어 본다.


거리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고, 마트에서도 양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나온다. 각자의 묵은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겠지. 결국 코로나로 끝난 한 해, 모두가 고생이었다.


내가 휴직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아버님을 용인 수목장림에 모시고, 우리 가족은 군산으로 내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조촐한 돌잔치를 치르고, 민성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금치와 애호박, 달걀, 그리고 민성이 반찬거리 몇 가지 더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내는 요즘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내일 아침엔 조금 새로운 반찬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늘 지극정성이다. 


육아휴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외롭고 답답했다. 화나고 서운할 때가 많았다. 투정을 받아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다.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지난 7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2021년이 코 앞이다.


짐도 한가득이라 집에 갈 땐 더욱 거북이가 되었다. 천천히 2020년을 되돌아본다. 아쉬운 것도 많았지만 뭐 그리 못한 것도 없다. 무엇보다 민성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그거면 됐다. 잘해보자, 새해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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