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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02. 2021

그의 나이, 이제 세 살

휴직 247일째, 민성이 D+496

'눈아, 네가 펑펑 내려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 2021.1.1.  아파트 단지 공원


새해 첫날, 오전부터 아파트 단지 공터엔 사람이 많았다.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건, 이곳에 이사 오고 처음 보는 것 같다. 눈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든 그룹엔 아이들이 한둘씩 껴있었다.


민성이 또래부터 조금 더 큰 형 누나들까지, 그들은 열심히 눈밭에서 뒹굴었다. 부모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썰매였다.


아이가 썰매에 오르면, 아빠는 썰매를 끈다. 정말 모두가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맞춘 건 아니겠지만 유독 빨간 썰매가 많았다. 뭐지. 군산의 지역 문화 같은 건가.


두터운 옷가지로 민성이를 꽁꽁 싸매고 우리도 집을 나섰다. 털모자와 장갑, 장화까지, 눈만 빼고 다 가렸다. 눈밭을 아장아장 거니는 아이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내와 나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민성이 어린이집 친구도 만났다. 눈썰매가 없던 우리를 위해 친구 어머니는 흔쾌히 썰매를 빌려주셨고, 민성이는 그렇게 생애 첫 눈썰매를 탔다.


"민성아, 우리도 돈 많이 벌어서 썰매 사자." 썰매에 올라 눈 위를 미끄러지는 아이를 따라다니며 회심의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농담이라고 생각 안 하셨나 보다. 내가 일을 안 해서 그런가.


민성이가 눈 위에 몇 번 넘어지는 바람에 아이 옷이 금방 젖었다. 30분이나 됐을까.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도 추웠는지, 아이도 별로 떼를 쓰지 않았다.  


따뜻한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혀 주니, 그는 아내 등에 찰싹 붙어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오후엔 할머니 집에 가서 폭풍 애교를 선보였다. 그렇게 새해 첫날을 보냈다.


민성이 나이 이제 세 살, 그는 곧 생후 500일을 지나 여름엔 두 돌을 맞는다. 겨울이 오면 난 다시 상경을, 복직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내 육아휴직도 끝이다. 마지막 1년, 민성이는 또 얼마나 자랄 것인가. 반갑다. 잘해보자,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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