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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03. 2021

심형래와 박보검

휴직 248일째, 민성이 D+497

'흠냐. 아빠, 또 눈썰매 태워주세요.' / 2021.1.1. 우리 집


난 자취를 오래 했다. 고등학생 땐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아예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결혼으로 자취 생활을 공식 마감하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불면증까진 아니었지만, 자취를 할 땐 자는 게 영 시원찮았다.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들 때보다 뒤척일 때가 더 많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눈이 빨개져 쓰러지듯 잠들 때가 대부분이었다.


결혼을 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밤에도 계속 구 여친, 현 아내와 붙어있을 수 있다는 거였다. 아내 옆에선 잠을 잘 잤다. 마음이 허해 괜히 핸드폰을 뒤적이지 않아도 됐다.


결혼 5년 차, 아이 16개월, 아내와 각방을 쓰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 때문이다. 우리는 군산에 온 뒤부터는 민성이를 아이 방에 따로 재운다. 민성이가 밤에 잘 못 잔다 싶으면 우리 둘 중 한 명이 아이 옆에서 자기는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아내는 대놓고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한 번은 자기 전 거실에서 브런치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졸리다면서 내게 손인사를 하고 유유히 민성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 저녁, 나는 핸드폰을 뒤적이다 밤늦게 잠들었다. 자취생 때처럼. 물론 한 사람이 아이 옆에서 자면 다른 한 사람이 편히 잘 수 있긴 하다. 그래서 아내가 너무 피곤해하면 내가 아이 방에서 자는 날도 꽤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민성이가 잘 자는데도, 아내가 아이 방에 들어가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 한 번은 내가 왜 자꾸 민성이 방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말했다. "오빠라면 심형래랑 박보검이 있는데, 누구 옆에 가서 잘 거 같아?"


누가 심이고 누가 박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둘째 계획이 없으니, 아이를 혼자 재우면서도 늘 고민을 하긴 했다. 나는 아내와 둘이서 자는데, 민성이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자면 무섭고 외롭지 않을까, 라는.


나도 어렸을 땐 동생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가 나보다 먼저 잠들었는지 잘 때마다 확인했다. 민성이가 안쓰럽긴 하지만, 가족을 위해선 아이의 분리 수면이 필요하고, 부부는 각방을 쓰지 않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고민을 해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당분간 이런 생활은 지속될 것 같다. 박보검에게 새 여친이 생겨서 아내가 하릴없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심형래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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