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Jan 07. 2021

술 마신 다음 날

휴직 252일째, 민성이 D+501

'흠. 이제 그다음엔 뭘 먹어볼까.' / 2021.1.1. 부모님 집


깊은 새벽, 누군가 깨운 것 마냥 느닷없이 눈을 뜬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는다. 역시나, 새벽 3시가 조금 안됐다. 아내는 침대에 없다. 민성이 방에서 자고 있나 보다.


남들은 술 먹고 나면 아침에 못 일어나서 난리라는데, 난 늘 이렇다. 쓰러지듯 잠들고, 뜬금없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지독한 숙취가 시작된다. 속이 풀리려면 적어도 점심은 되어야 한다. 


그제(5일) 친한 회사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 때문에 다음날 군산에 내려온다며,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내가 휴직하고 회사 동료들을 본 적이 있던가. 처음이다.


마침 아내도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여러모로 사정이 좋았다. 후배 일이 끝나고 오후 5시쯤 아내가 추천해 준 중국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군산에 오면 짬뽕을 많이 찾는다. 그래도 항구라고, 해물이 많아서 그런가.


조그만 룸에서 코스 요리를 먹었다. 아내 말대로 가성비가 좋았다. 술은 '소맥'으로 했다. 회사 다닐 땐 매일 소맥이라 참 지긋지긋했는데, 휴직을 하니 자주 생각이 난다. 집에서 '혼맥'은 해도, '혼소맥'은 쉽지 않으니.


나는 애 보는 이야기를 하고, 그들은 회사 이야기를 했다. 내 얘기만큼이나 회사 얘기도 특별한 게 없었다. 방송은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우리 회사도 많이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구성원들이 신바람 날 리 없다.


물론 흥미로운 소식도 있었다. 회사의 어떤 동료들은 3년이 넘는 사내 연애 끝에 곧 결혼을 앞두고 있고, 또 다른 동료는 다른 일에 도전해보겠다며 퇴사를 했단다.


모든 이야기가 즐거웠다. 부모님과 아내가 아닌 다른 어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기분 전환이 됐다. 쉴 틈 없이 수다를 떨다 후배 기차 시간에 맞춰 식당을 나왔다. 


아내는 어제 내가 술에 취해 한 얘기를 13번이나 했다고 했다. 그렇게도 신이 났나 보다. 숙취에 침대에서 조금 뒹굴다 보니 민성이가 일어났다. 다시 일상이다.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해장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꿩민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