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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19. 2021

아빠는 서운해

휴직 264일째, 민성이 D+513

'뻥튀기는 역시 이렇게 호호 불면서 먹어야 제 맛이에요!' / 2021.1.18. 우리 집


우리 집 아침은 6시쯤, 민성이 기상 시간에 맞춰 시작된다. 늦어도 6시 반을 잘 넘기지 않는다. 보통 아내가 이제 잠에서 막 깬, 그래서 매우 혈기왕성한 민성이와 놀아주고, 나는 아이 아침밥을 준비한다.


민성이 밥은 웬만하면 찬 3개와 국 하나씩을 내놓으려 노력한다. 저녁과 달리 아침밥은 일어나자마자 챙겨줘야 해서 냉장고에 있는 찬을 골라 데워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어제(18일)는 반찬이 마땅치 않았다. 별 수 없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찜기에 가자미를 올렸다. 아이한테 주는 생선은 프라이팬에 튀기기보다 쪄주는 게 좋다던가. 민성이 할머니의 지시 사항이다.


그렇게 쪄낸 생선의 가시를 곱게 발라 다른 반찬과 함께 아드님 앞에 놓아드렸다. 하지만 민성이는 반찬을 본체 만 체했다. 밥도 반은 남겼다. 요즘 민성이는 밥을 잘 먹을 때보다 불성실하게 먹을 때가 많다.


민성이 식판을 치우는데 거의 그대로 남겨진 반찬을 보니 순간 억한 심정이 들었다. 안다. 민성이가 밥을 잘 먹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해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잘 먹어주는 건 어른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는 그럴 수 없다. 물론 민성이는 내가 해 준 밥이 맛이 없어 그랬을 수도, 아니면 그냥 빨리 놀고 싶어 그랬을 수도 있다. 그건 알 수 없다.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눈곱도 안 떼고 일어나자마자 열심히 아침밥을 차렸는데. 하긴 민성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의 나이 세 살,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고 자신을 돌봤다는 것도 기억 못 할 텐데.


휴직을 한 지 9개월, 민성이는 여전히 엄마만 찾는다. 내 품에 안길 땐 대부분 엄마가 없을 때뿐이다. 아이가 알아주길 바라고 휴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내 옆에서 투명인간으로 지내다 보면 씁쓸할 때가 있다.


밀당 고수인 그는 아빠가 아침에 서운한 걸 알았는지, 저녁은 잘 먹어주었다. 물론 엄마가 퇴근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에게로 달려갔지만. 육아휴직을 해도 아빠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뭐, 괜찮다. 그도 나중에 아빠가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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