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67일째, 민성이 D+516
어제(21일)는 날이 꽤 포근했다. 창 밖에 드문드문 박혀 있던 눈도 많이 녹아있었다. 그래 봐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이지만, 오랜만에 민성이와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에 산, 걸치면 민성이 발목만 겨우 보일랑 말랑 하는 롱 패딩을 꺼내 입혔다. 멀리서 보면 조그만 패딩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유모차를 태우지 않으려면 좀 더 따뜻하게 입혀야 한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는 게 어린이집 가기엔 더 빠르지만, 확실히 같이 걷는 게 더 즐겁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과 토끼 눈으로 주변 사물을 탐색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건 분명 큰 기쁨이다.
하지만 오후 들어 창 밖이 흐렸다. 혹시 몰라 유모차를 가지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조금씩 실비가 내린다. 유모차를 끌면서 우산을 쓰기는 영 불편하다. 급한 대로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민성이를 유모차에 태우려는데 아이가 극렬히 저항했다. 비가 올 줄 모르고 두꺼운 옷을 입혀놔서 유모차에 태우기 힘들기도 했다. 아이를 내려놓고 대신 모자를 씌워주었다.
그래. 비 좀 맞으면 어때. 가녀린 실비 사이로 민성이도 걷고 나도 걸었다. 요즘 한 번씩 이렇게 밖에 나오면 민성이는 너무 즐거워한다. 추위에 집 앞 놀이터도 잘 데려가지 못했다. 그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비는 그치지 않았고, 우리 옷도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는데. 집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민성이가 나를 보며 두 팔을 벌렸다. 이젠 들어가도 좋단 의미다.
흐린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는 아이들 야외활동이 있는 날 비가 내리더라도 우비에 장화를 신고 예정대로 활동을 진행한다고, 어느 육아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민성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맑은 날만 있는 게 아니다.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길이 험하면 험한 대로 참고 견디며 나아가야 한다. 민성이에게도 계속 우산을 씌워주기보다, 같이 비를 맞으면 걷는 게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우리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