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68일째, 민성이 D+517
어제(22일)는 그제보다 더 따뜻했다(비 좀 맞으면 어때). 아침 8시 반, 세 가족이 똑같이 집을 나와 아내는 지하주차장으로, 부자는 1층으로 향했다. 씩씩한 민성이는 엄마와도 늘 쿨하게 헤어진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늘 생각했던 게 있다. 후일, 나는 아이 책가방을 들어주지 않겠다. 한 손엔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엔 아이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부모를 많이 봐왔다. 난 그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 책가방은 아이가 들어야 한다. 짐이 너무 많으면 내가 도와줄 순 있지만, 아이의 두 손은 가볍고, 내 손만 무거워선 안된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 아빠가 된 지금, 나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근래 들어 가장 포근했던 어제, 나는 민성이와 어린이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살포시 어린이집 가방을 메어주었다. 민성이는 저항하지 않았다. 가방을 멘 그의 뒷모습이 늠름해 보였다.
하원 후엔 오랜만에 민성이와 집 앞 놀이터에 갔다. 겨울이 오기 전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렀던 곳, 아이 돌발진이 찾아오는 줄도 모르고 민성이 유격장이라며 그를 신나게 굴리던(?) 바로 그곳이다(돌격 앞으로!).
나만큼이나 민성이도 놀이터를 반겼다. 눈물 나는 재회다. 코로나에, 추위에 그동안 얼마나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던가. 놀이터는 그대로였지만, 민성이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민성이는 거의 넘어지지 않았고, 가끔은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자주 넘어졌고, 뛰기는 커녕 걷는 것도 위태로울 때가 많았다. 아이가 그만큼 자란 것이다.
이젠 나도 민성이 뒤에서 뒷짐을 지고 산책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민성이가 넘어질까 전전긍긍하던 시절, 아이가 노는데도 먼발치에서 느긋이 바라보던 다른 집 엄마가 그리도 부러웠는데.
민성이는 집에 돌아와 간식도, 저녁밥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금요일 퇴근을 앞둔 엄마를 데리러 그녀의 회사로 향했다. 차에서도 그는 얌전했다. 아이가 날로 자란다. 그 속도에 다시금 놀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