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66일째, 민성이 D+515
출근을 앞둔 우리 집 풍경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거실엔 아이 장난감과 기저귀, 옷가지가 매우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우리 부부와 민성이가 먹다 남긴 그릇의 반은 식탁에, 나머지 반은 싱크대에 곤두박질쳐있다.
아마 우리 집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내가 육아휴직 중인, 그래서 외벌이인 우리는 그래도 양반이다. 집이 난장이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내가 치우면 되니까. 맞벌이를 하는 집은 종일 그 상태일 거다.
어지러이 널려있는 물건들은 정리하면 그만이다. 출근 준비를 더욱 전쟁통으로 만드는 건 역시 아이다. 그는 쉴 새 없이 어지럽히고 떼를 쓰며 아주 정성껏, 최선을 다해 출근 준비 중인 아내의 발목에 매달린다.
아내는 빠르면 8시, 늦어도 8시 반엔 집을 나서야 한다. 그녀가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데는 30분은 걸린다. 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 30분 동안엔 민성이를 떼놓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민성이는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러 안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워낙 울고 불며 난리를 쳤다. 그래서 아내는 한동안 아이를 화장대 옆에서 놀게 했다. 민성이는 울지 않았지만, 대신 그녀의 채비가 늦어졌다.
내가 옆에 있어도 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난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안방 문을 닫은 뒤, 억지로(?) 아빠와 거실에 있게 했다. 당연히 민성이는 문 앞으로 달려가 서럽게 울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그럴 때마다 난 차분히 말했다. "엄마 출근 준비해야 해. 조금 기다려주자." 민성이는 계속 문 앞에 서서 날 애처롭게 쳐다봤지만, 놀랍게도 시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와 내 앞에 앉아 놀기 시작했다.
고작 9개월이지만, 민성이를 돌보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아이가 하루 종일 떼를 쓰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의외로 기다릴 줄도, 참을 줄도 안다.
민성이가 어릴 때는 가능한 원하는 걸 다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엄마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어줄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민성이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민성이는 잘하고 있다. 점점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