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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26. 2021

나사와 드라이버

휴직 271일째, 민성이 D+520

'의자 벨트 정도는 이제 저 혼자 채울 수 있어요!' / 2021.1.25. 부모님 집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 있는 집에 선물해주면 좋겠다 싶은 물건이 생긴다. 제3자가 보면 '뭐야 저게' 할 수 있지만, 아이를 키워본 자는 그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라 물건도 바뀌는데, 요즘 내가 아주 긴요하게 쓰고 있는, 그래서 정말 나중에 친한 지인에게 선물해줘야겠다 싶은 물건이 있다. 초소형 드라이버와 AAA 사이즈 건전지다.


요즘 아이들 책 중엔 소리 책이 많다. 동요나 악기 소리, 동물 울음소리 등 종류가 다양한데, 책에 그려진 고양이를 누르면 '야옹' 소리가 나는 식이다. 우리 집에도 소리 책만 열 권 가까이 있다. 


소리 책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민성이 역시 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출 정도로 좋아한다. 하루에 같은 책을 대여섯 번씩 읽는 건 애교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가 매일 그렇게 눌러대니, 책이라고 별 수 있나. 아이 눈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말한다. "아빠가 소리 나오게 해 줄게."


건전지를 가는 건 너무도 간단한 일인데, 이상하리만큼 귀찮다. 청소와 설거지, 빨래는 매일 거르지 않으면서, 아이 책에 밥 주는 건 참 쉽게 미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또 소리책을 누르지만, 다시 적막감이 흐른다.


반복되는 거짓말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래, 몇 분 걸릴 일도 아닌데 해치워버리자. 지난주, 공구함을 뒤져 집에서 제일 작은 드라이버를 꺼냈다. 하지만 민성이 소리책의 나사에는 맞지 않았다. 드라이버가 너무 컸다.


맞지 않는 홈에 드라이버를 억지로 끼웠다. 드라이버가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나사는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책을 벽에 집어던질 뻔했다. 참을성 수준이 거의 민성이 급이다.


결국 아버지에게 드라이버를 빌려왔다. 어제(25일) 민성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건전지가 다 된 소리 책을 꺼내 드라이버를 대봤다. 딱 맞는다. 내리 세 권의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욱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해결하면 모두 풀리는 일이다. 어딘가엔 분명 나사에 딱 맞는 드라이버가 있다. 조급해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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