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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27. 202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휴직 272일째, 민성이 D+521

'어이구, 내가 못 살아. 아빠! 집 좀 깨끗하게 씁시다. 네?' / 2021.1.23. 우리 집


민성이가 크면 클수록, 그에게서 어릴 적 아내와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 아내와 나누는 대화 중엔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많다. 내가 어렸을 때도 이랬는데, 혹은 이랬다던데.


민성이는 가끔 사자후를 토한다. 17개월 아이의 조그만 목청에서 어찌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 내 모습을 쏙 빼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난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를 닮은 것도 있다. 우리 집엔 몇 달 전, 민성이가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 사놓은 곰돌이 자동차가 있다. 곰돌이 발아래 바퀴가 달려서 아이가 제 발로 차면서 앞뒤로 이동할 수 있는 장난감 차다.


처음 곰돌이 차를 집에 들였을 땐 아이가 안장 위에 오르는 것도 버거워해서, 차는 한동안 거실 한쪽에 쓸쓸히 방치돼있었다. 민성이도 차를 본체만체했다.


하지만 아이가 잘 걷게 되면서부터 그는 서서히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한 번 운전에 맛을 들이자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속도를 올렸고, 분명 눈 앞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다.


일찍이 아내는 어렸을 적 자신이 목마 스피드광이라 고백한 바 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목마가 자전거로 바뀌었을 때도 그녀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장모님은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단다. 


주말이었나. 목욕을 마치고 나온 민성이는 그의 몸에 로션을 바르려는 아내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알몸으로 곰돌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정말 바람처럼 우리 눈 앞에서 사라졌다.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우리 둘 다 한참 웃었다. 나는 박장대소했고, 아내는 저러다 다칠까 걱정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본인 어렸을 때를 생각 못하는 것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민성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순간이 많아진다. 행복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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