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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an 25. 2021

걷다 지친 그대에게

휴직 270일째, 민성이 D+519

'아빠,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기분이 좋네요!' / 2021.1.24. 서천 국립생태원


어제(24일) 오랜만에 국립생태원에 다녀왔다. 일기를 뒤적여보니 3개월 만이다(코로나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그 3개월 사이에, 코로나 확진자는 하루 천 명을 찍었다. 그때는 봄이 아니라 초겨울 정도였던 셈이다.


확진자가 3백 명대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국립생태원도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실내전시관은 모두 휴관했고, 야외전시구역만 개방하고 있었다.


생태원은 오전 9시 반에 문을 연다. 우리는 9시 조금 넘어 집에서 출발했고, 생태원이 거의 문을 열자마자 도착했다. 생태원은 가까워서 좋다. 아이와 나들이를 갈 땐 역시 가까운 곳이 최고다. 


코로나 시국인 데다 이른 시간이어서 다른 관람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흡사 휴무일에 우리 가족만 몰래 담을 넘어 생태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 넓은 들판에 보이는 건 우리 세 가족뿐이었다.


날씨도 좋았다. 산책을 하다 파카를 벗어야겠다고 생각하긴 오랜만이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사람은 자주 햇빛을 쐬야 한다. 코로나와 추위에 쭈글쭈글해진 몸과 마음이 곧게 펴지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민성이도 모처럼 야외 나들이에 신이 나 보였다. 아이는 그 짧은 다리로 생태원 이곳저곳을 부지런하게도 돌아다녔다. 가끔은 귀여운 괴성(?)을 내지르며 뛰기도 했다.


17개월짜리가 저렇게 많이 걸어 다녀도 되나 싶을 때쯤 민성이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더 자주 넘어지기도 했다. 민성이는 엄마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민성이를 안아줬는데, 산책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횟수도 많아졌다. 그리고 민성이는 나한테는 안기려 하지도 않았다. 무조건 엄마 품만 찾았다.


민성이는 이제 꽤 무겁고 크다. 가녀린 아내가 계속 아이를 안고 돌아다닐 순 없었다. 하지만 유모차에 앉히려 하면 발버둥을 쳤다. 결국 민성이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걷든가, 유모차에 타든가. 


민성이는 이후로도 계속 보챘지만 아내와 나는 안아주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걷고 또 걷다가 못 이기는 척 유모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올해는 민성이와 나들이 갈 일이 많을 텐데, 틈틈이 훈련(?)을 잘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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