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79일째, 민성이 D+528
아내가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민성이와 부모님 집에서 아내가 퇴근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6시가 되자마자 짧게 메시지가 왔다. "오빠, 야근해야 돼."
그녀는 안 그래도 계속 일이 쌓여서 조만간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얼마 전 얘기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급히 메시지를 보낸 걸 보면, 급하게 일이 생겼나 보다 싶었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민성이 옷을 입힌 뒤,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민성이와 둘이 있기도 오랜만이다.
몇 달 전부터 아내는 저녁에 민성이를 목욕시키고 재우는 걸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워킹맘인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다. 아내가 야근으로 자리를 비운 어제(2일), 모처럼 내가 민성이를 씻기고 재웠다.
자연스레 아이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일단 목욕하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욕조 안에서 조그만 컵으로 물을 따르고 부으며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 싫어했던) 머리 감는 것도 잘 참았다.
하지만 재우는 건 예전보다 더 힘들었다. 일단 아이가 방에 들어가길 싫어했다. 요즘 민성이는 평균 8시쯤 잠드는데, 그러려면 7시 반에는 자러 들어가야 한다. 민성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짜증을 잔뜩 내는 걸 보면 분명 잠은 오는데, 자꾸 책을 읽어달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떼를 썼다. 그럼 너는 거실에서 놀고 있으라고, 아빠는 자겠다고 아이 방에 혼자 들어가니 대성통곡을 한다.
양 팔에 토끼와 곰돌이를 두른 채 한참을 내 품에 안겨서야 민성이는 겨우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그는 몇 분을 더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하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계를 보니 7시 52분이다.
잠옷이 축축했다. 곳곳이 민성이 눈물 콧물이다. 더 놀고 싶은 아이를 나 편하자고 억지로 재우는 걸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건 아니다. 아이가 놀고 싶어 한다고 매일 밤을 새울 순 없다. 아이는 잠을 많이 자야 한다.
얼마 전 어린 딸을 둔 엄마이자, 회사 동기의 SNS를 보니 그녀의 딸이 그랬단다. "엄마, 밤이 없었으면 좋겠어." 너무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민성이도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야,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