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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Feb 04. 2021

밀당의 고수

휴직 280일째, 민성이 D+529

'할아버지, 제가 포크로 이 시계를 고쳐볼게요!' / 2021.2.3. 우리 집


지난주부터, 민성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부모님 집에 가고 있다. 퇴직 후 몇 가지 소일거리를 해오시던 아버지 일 하나가 최근에 끝나서, 부모님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후 3시, 민성이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정문으로 간다. 그럼 아버지가 이제 막 일을 마친 어머니를 태우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때부터 아내가 퇴근하는 6시까지, 3시간을 부모님 집에서 보낸다. 어른 셋에 아이 하나,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 눈에선 꿀이 떨어지고, 자유로워진 나는 그 틈에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엄마는 회사에, 할머니는 주방에 있고, 아빠는 식상하다. 민성이는 그래서 요즘 할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낸다. 장난감도 별로 없는 부모님 집에서, 민성이는 신기하리만큼 할아버지와 잘 논다.


그래서 어제(3일) 민성이는 할아버지 껌딱지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어디를 가든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참 정직하다. 놀아준 만큼 좋아하고, 따른다. 


한때 입을 열 때마다 '아빠'를 불러 내 애간장을 녹이던 아이는(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요새는 또다시 내게 시큰둥하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를 찾고, 부모님 집에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찾는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요즘은 내가 제대로 아이를 보는 시간이 1시간이 될까 말까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엄마가, 어린이집을 다녀와서는 부모님이 아이와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날 본체만체할 수밖에.


지금 민성이의 주양육자는 육아휴직 중인 나다. 하지만 민성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열해보면 엄마가 제일 앞에, 내가 제일 끝에 있고 그 가운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같다.


심지어 근래 민성이가 나와 둘이 있을 땐, 웃을 때보다 울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아이의 밀당(?)에 울고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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