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278일째, 민성이 D+527
홀수는 애매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친한 친구는 짝수인 게 좋다. 밥을 먹을 때도, 버스에 탈 때도 홀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인 사람이 생긴다.
지금 우리 집도 그렇다. 둘이 셋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인 사람이 생겼고, 그건 당연히 나다. 특히 요즘은 밤에 혼자일 때가 많다. 아내가 민성이 방에 가서 잘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녀는 심형래보다 박보검이 좋다며 당당히 외도를 선언했고(심형래와 박보검), 나는 일주일에 반 이상은 독수공방 한다. 그럼 난 침대 위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쓸쓸히 잠들곤 한다.
한 번은 그녀가 또 슬그머니 민성이 방으로 가려고 하길래, 잘 자고 있는 아이 치근덕대서 깨울 생각 말라고 했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는 민성이 사진을 얼마간 뒤적이다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민성이를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니 그냥 민성이 닮은 사람 옆에서 자야겠다. 휴. 꿩 대신 닭이네."
나는 순식간에 민성이를 닮은 닭이 되었다. 민성이를 닮기라도 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닭 노릇도 못할 뻔했다.
나는 아내가 그럴 때마다 결국 서른 살 어린 여자에게 민성이를 뺏길 거라고, 그래서 망연자실해질 거라고 그녀에게 말해주곤 한다. 그때는 아내도 꿩을 포기하고 닭에게 돌아오겠지. 최소 20년 남았다.
어제(1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민성이를 껴안은 채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백 번 정도 하다가 그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의 입에서 내가 있어 행복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못난 아비가 못한 일을 아들이 해준 거다. 내가 10년 동안 못한 일을 민성이는 불과 17개월 만에 해냈다.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꿩이 될 수 있을까? 그냥 20년을 기다리는 게 빠를 듯하다. ###